
“아침부터 이게 웬일이야!”
SK텔레콤(SKT)이 해킹 공격으로 가입자 유심 정보가 대거 유출된 이후 유심칩 무료 교체에 나선 첫 날인 28일 오전, 춘천 중앙로의 한 SKT 매장에는 소식을 듣고 온 고객 수 십여명이 줄지어 서 있었다. 매장 안은 이미 고객들과 직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길게 늘어선 줄에 지나가던 시민들은 “이게 무슨 줄이냐?”하고 관심을 보이는가 하면, 자초지종을 듣고는 “KT나 LG는 괜찮은거죠?”라고 묻기도 했다.
이날 매장 입구 쪽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이모(60·사농동)씨는 “번호표나 안내하는 직원이 없다. 우리 보고 알아서 (대기)하라는 건가”라면서 “오늘 유심을 일단 바꾸고 나서 생각해본 뒤, 다른 통신사로 바꿀 것이다. 그동안 SK 쓰면서 문제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매장 옆 병원 입구 쯤에 서있던 송모(31·소양동)씨도 “번호표나 예약도 없이 무작정 기다리게 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면서 “저야 젊은 사람이라 괜찮지만 연세 있는 분들은 힘들지 않나. 나도 9시 50분부터 벌써 1시간 20분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기다리던 시민들 대부분은 번호표나 예약 시스템, 안내 직원 없이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데 대해 불만을 터뜨렸다.
줄 뒤쪽에서 부인과 함께 순서를 기다리던 김모(69·퇴계동)씨는 “번호표나 매장 담당자 설명이 없어 답답하다”면서 “SKT를 굉장히 오래 썼는데 불안해서 부인과 나왔다”고 밝혔다.
기자가 시민들과 인터뷰를 하는 사이, 매장 관계자가 나와 11시 30분부터 번호표를 배부하기 시작했다.

번호표 배부에 나선 매장 운영자 A씨는 “유심 교환을 기피하는 대리점도 있는데 우리는 지난주 금요일(25일)부터 교체해드리고 있다. 일요일은 쉬었으니 오늘이 3일째”라면서 “원래 유심 교체는 금방 진행되는데 내방하신 고객들 문의에 안내해드리고, 전산도 이번 사태로 몰리다 보니 한 명당 25~30분 정도 소요된다”고 전했다.
이어 “평소에는 유심 재고를 30개 정도 가지고 있는데, 사태가 터진 이후 본사에 신청해서 200개를 추가로 받았다”면서 “우리 직원들도 다 SKT 쓰는데 아직 유심을 못 바꾸고 있다. 일단 유심보호서비스만 가입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유심 교체 과정에서 리더기로 찍어야 하는 단계가 있는데 이것도 과부하가 걸려서 망가졌다”면서 “본사에 새로 주문한 리더기가 오늘 도착해 곧바로 개봉해 유심 교체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때 대기 줄의 끝에서 있던 한 중년 남성이 흥분한 상태로 “유심 교체 관련 문자도 안왔고, 따로 안내 받은 것도 없다”면서 “줄 중간 쯤에 얼마나 걸린다고 좀 써붙여놓기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이번 사태를 두고 정부와 SKT에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있다는 대학생 오모(26·근화동)씨는 “따로 이번 사태와 관련한 문자나 안내를 받지 못해 포털사이트 뉴스를 통해 알았다”면서 “유심을 교환해야하는 것도 뉴스에 달린 댓글을 보고 알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안내, 사과, 보상 관련 연락이 일절 없었다는 점이 아쉽다”면서 “이동통신 3사가 과점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사태에 안일하게 대응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만이 있다. 정부가 추진하던 제 4이동통신사를 빨리 도입해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전 11시 51분께 한 노부부가 99번, 100번 대기표를 받으면서 이날 해당 지점의 유심 교체 대기 인원은 마감됐다.
한편, SKT는 지난 18일 해커에 의한 악성 코드로 유심 정보 유출 피해가 발생하면서 이날부터 전국 T월드 매장 2천600여 곳에서 유심 무료 교체 서비스를 진행했다.
이에 따라 전국 T월드 매장에 오전부터 이용자들이 줄을 길게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SKT는 온라인으로도 유심 교체 예약 신청을 받고 있다. 다만 이 사이트에도 예약자가 몰리면서 한때 대기 인원이 12만명 가까이 생기는 등 접속 장애를 빚었다.
유심 무료 교체 예약 시스템은 웹페이지 주소(care.tworld.co.kr)로 직접 들어가거나 검색 포털, T월드 홈페이지 내 초기 화면 배너를 통해 접속할 수 있다. 본인 인증을 거쳐 교체 희망 매장을 선택하면 된다.
유심 교체 온라인 신청을 위한 본인 인증은 휴대전화를 통해 이뤄진다.
성명·주민등록번호 앞자리·보안 문자 번호·전화번호 등에 대한 확인을 거쳐 혹시 타인이 대신 신청하는 것을 방지한다.
SKT는 유심 현장 교체 시 신분증과 예약 확인 문자를 대조해 가입자 본인에게 새로운 유심을 전달할 계획이다.
이때 온라인 예약 신청을 한 고객, 그리고 직접 매장에 방문해 유심 교체를 진행하는 고객들은 반드시 실물 신분증(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여권)을 방문해 지참해야 한다.
일부 매장에서는 모바일 신분증으로 본인 확인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후 교체 날짜 안내는 예약 순서대로 문자를 통해 고지된다.
또, 유심 교체 예약 시스템 대기 화면을 유심 불법 복제를 예방하는 유심 보호 서비스 가입 링크와 연결했다며 유심 보호 서비스 활용에도 적극 나설 것을 독려했다.
여기에 SKT는 여러 회선을 가진 가입자는 스마트폰, 태블릿, 워치 등 소유 회선 전체에 대해 한 번의 신청으로 교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SKT의 사태 수습을 위한 노력에도 논란이 커지는 모양새다.
일부 이용자들은 공동 대응 사이트를 개설하고, 국회 국민동의 청원 등에 나섰다. 또, 사태 이후 처음으로 실제 유출 피해를 주장하는 피해자가 나왔다.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SKT의 일부 이용자들은 'SKT 유심 해킹 공동대응 공식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운영진들은 언론사에 보낸 메일을 통해 "유출된 정보는 휴대전화 번호 인증을 통해 제공되는 다양한 금융,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중대한 2차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SKT의 대응은 매우 미흡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명확한 피해 범위나 규모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어 이용자들의 불안감과 혼란이 증폭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국회 국민동의 청원을 통해 철저한 진상규명과 피해 규모 파악, SKT의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 정부의 실효성 있는 피해 구제·재발 방지책 마련을 요구했다.
국회 청원은 5만 명 이상 동의를 목표로 진행 중이다.
이들은 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대해 SKT의 통신과금 서비스 이용약관 위반 여부를 조사해 달라며 민원을 제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며, 가입자 집단 소송에 대한 설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포털 사이트에도 지난 27일 'SK텔레콤 개인정보 유출 집단소송 카페'가 개설돼 하루 만에 3천명이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페 운영진은 해킹 피해에 대한 집단 소송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부산에서는 한 60대 남성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알뜰폰이 개통되며 은행 계좌에서 5천만원이 빠져나가는 피해를 봤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부산 남부경찰서는 지난 22일 이런 내용의 신고를 60대 남성 A씨로부터 접수했다고 28일 밝혔다.
경찰 등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2일 자신이 쓰고 있던 SKT 휴대전화가 갑자기 계약 해지되며 본인 명의로 KT 알뜰폰이 새로 개통된 사실을 확인했다.
쓰고 있던 휴대전화가 먹통이 돼 대리점을 찾았다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날 A씨 계좌에서는 현금이 1천만원씩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총 5천만원이 모르는 사람에게 이체됐다.
이를 확인한 A씨는 경찰에 신고하고 은행에 지급정지 요청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초기 단계로 내용 확인이 이뤄지지는 않았다"면서 "휴대전화 무단 개통 과정과 은행 거래 내용 등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