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대한민국 군대가 여전히 우물과 계곡물에 의존해 식수를 조달하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을 넘어 참담하다. 특히 강원특별자치도 화천지역의 실태는 심각하다. 화천군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군부대 상수도 보급률은 고작 33%에 불과하며, 무려 67%의 장병들이 정수되지 않은 자연수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단순한 불편의 문제가 아니라 최소한의 안전조차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명백한 행정 실패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열악한 급수 환경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2022년 국방부가 밝힌 자료에서도 강원 전방 6개 사단 급수원 559곳 중 우물과 계곡수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음에도, 1년이 지난 사이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경기도 사단들이 상수도 보급률 83%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강원도 전방 부대는 사실상 물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화천군은 민군 통합 상수도 사업을 2020년 환경부로부터 승인받고도 5년이 넘도록 취수지 이전 단계에 머물고 있다. 총사업비 1,014억원 중 고작 120억원만이 확보됐다. 1년 예산의 20%를 넘는 초대형 사업을 기초지자체가 독자적으로 감당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아직까지 명확한 분담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부처가 정작 장병의 생명과 건강에는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국가의 책무 방기다. 장병들은 개인의 선택 없이 국가의 명령에 따라 전방 부대에 배치된다. 따라서 장병들이 최소한의 생활 여건, 특히 음용수와 같은 기본 생존 인프라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인간다운 생활의 권리에 해당한다. 선진 군대는 총과 전투장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물 한 모금조차 위생을 담보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한 군을 선진 군대라 말할 수 없다. 또한 이 사안은 군장병만의 문제가 아니다. 통합 상수도가 구축되면 주민 3,200여명에게도 안전한 수돗물이 공급된다. 이는 곧 군과 지역사회의 상생 문제이기도 하다. 군은 지역에 의존하고, 지역은 군의 존재로 인해 경제적 순환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현재의 취약한 급수 현실은 그 균형을 무너뜨릴 뿐 아니라 젊은 세대를 군에 보내는 국민의 신뢰마저 저해하고 있다. 이제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 지역 상수도 구축 사업을 ‘지방의 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국가 안보와 직결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더는 장병의 생존권을 지자체의 예산능력에 맡겨 방치해서는 안 된다. 강원도는 대한민국 안보의 최전선이다. 그러나 이 땅을 지키는 이들의 건강과 안전이 외면받는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지키고 있는 것인가. ‘선진 군대’를 자처하려면 그 시작은 ‘깨끗한 물’이어야 한다. 안전한 물 한 잔조차 보장되지 않는 군대가 어떻게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겠는가. 지금 당장, 늦기 전에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