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들렀던 더불어민주당 허영(춘천갑) 국회의원실은 그야말로 문전성시(門前成市)였다. 대부분 정부 부처 혹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온 공무원들이다. 국회의 내년도 정부 예산심사가 본격화되면서 허 의원에게 사전 설명을 하기 위함이다.
의원실로 들어온 그와 20여 분 정도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누가 기다린다는 쪽지들이 계속 들어왔다. 분 단위로 나누어 약속을 잡고 있지만,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허영 의원의 인기(?)가 이렇게 치솟은 까닭은 그가 민주당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이하 예결위) 간사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예결위는 정부의 예산을 심사하고 결산하는, 국회 내에서 막강한 파워를 갖고 있는 곳이다. 모든 상임위원회를 거친 예산이 예결위에서 최종 조정돼야 본회의로 넘어간다. 예결위에서 예산이 삭감되면 ‘끝’이다. 유독 11월에 국회 방문객이 많은 이유다.

그래서 국회의원들은 예결위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상당한 애를 쓴다. 정부 부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무엇보다 지역 예산을 챙기기 수월해서다. 특히 여야 예결위 ‘간사’의 경우 ‘상임위원장급’으로 예우 맡으면서 예산 결정에 커다란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에 당내 각축전도 치열하다. 바로 그 예결위의 민주당 간사직을 허영 의원이 맡은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국회 내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 있는 민주당이 예결위 간사로 그를 임명했을 때 ‘왜?’라는 의문들이 나돌았다. 당내 비주류인 허영이 ‘요직 중의 요직’으로 꼽히는 이 자리에 앉게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던 탓이다. 이른바 친명계(친 이재명계) 의원 중에도 예결위 간사를 희망하는 인사들이 많았고, 심지어 당 대표나 원내대표에게까지 찾아가 간사직을 줄 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비명계(비 이재명계)로 꼽히는 허영에게 이 자리가 간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가 전문성이다. 예결위 간사는 하고 싶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수백조 원에 달하는 정부 예산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허영은 21대 국회 때 예결위 소위원회 활동을 두 차례나 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당시 꼼꼼하게 정부 예산을 파헤치는 그의 활동에 함께했던 의원들 사이에서도 긍정적 평가가 많았다.

또 하나는 친화력이다. 민주당 내에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속하는 허 의원은 친명·비명계를 떠나 대다수 의원과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당 입장에서도 모나지 않은 성품으로 소통이 가능하고 여당과의 논리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을 허영이 간사로 임명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다. 실제로 박찬대 원내대표에게 그를 추천하는 의원들이 많았다고 한다.
당내 정치적 역학관계가 작용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예결위원장인 3선의 박정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 친명계로 꼽힌다. 간사까지 같은 계파에서 차지하기에는 부담이 있었다. 허영의 경우 친명계도 아니면서 내부에 적이 많지 않고 무엇보다 이재명 대표가 호감을 갖고 있는 ‘차세대’라는 점도 고려됐다는 분석이 당내에서 나온다. 일각에서는 향후 대선에서 청년·중도표를 끌고 오는데 나름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허영을 친명계가 사전에 관리하기 위함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여기에 험지(險地)인 춘천에서 재선 배지를 단 그에게 지역 현안과 거의 관계가 없는 국방위를 배정했던 당 지도부의 미안함과 배려도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이유야 어찌 됐건 중요한 것은 국회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거대 야당의 예결위 간사에 허영 의원이 있다는 점이다. 그 자리까지 간 것은 그의 능력이다. 이제 우리는 그를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마침 강원특별자치도가 내년 예산과 관련해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 ‘사상 첫 국비 10조 원 확보’다.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허영을 비롯해 국민의힘 한기호(춘천을-철원-화천-양구) 의원도 예결위원으로 합류해 있는 상태다. 이런 분위기라면 '국비 10조 원 시대'를 여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지금부터는 ‘국회의 시간’이다. 지역 국회의원들이 다시 한번 강원의 미래를 위해 나서야 할 때다. 예산 확보는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본적 토대다. 연말에 ‘강원특별자치도 국비 10조 원 돌파’라는 타이틀이 강원일보 1면 머리기사로 오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