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법정칼럼]명확한 계약서 작성의 중요성

김정환 춘천지방법원 판사

법률가로 일하다 보면 수없이 많은 계약서를 접하게 된다. 필자 또한 변호사로 일하면서 다양한 유형의 계약서를 작성, 검토했고 판사로서 현재 담당하는 대부분의 사건에서도 당사자들이 제출한 계약서를 검토하고 있다.

계약서의 유형과 무관하게 계약서와 관련된 분쟁을 판단하는 일은 쉽지 않다. 계약서의 유형이 다양한 것처럼 계약서에 관한 분쟁의 유형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가장 자주 접할 수 있는 분쟁의 유형은 계약서 문언의 내용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계약 당사자들이 서로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다투는 경우로 보인다. 예를 들어 계약서에 계약 당사자인 ‘갑’이 A라는 내용에 관하여 ‘최대한 노력한다’, ‘최대한 협조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갑’이 A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에 관하여 당사자인 ‘갑’과 ‘을’ 사이에 분쟁이 발생한 상황을 가정하여 본다. ‘갑’으로서는 계약 체결 시 노력이나 협조의 사전적 의미를 근거로 A를 지켜야할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였을 것이고, 반대로 ‘을’은 ‘갑’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계약서에 ‘갑’이 A를 지켜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기재하기 보다는 노력이나 협조라는 보다 완화된 표현을 사용하였으므로 ‘갑’이 A를 지켜야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위와 같이 노력, 협조라는 단어를 근거로 법적 의무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는 대법원 판결이 몇 차례 있었다. 대법원은 노력, 협조라는 단어만으로는 법적 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없음이 원칙이지만, 계약서의 전체적인 문구 내용, 계약 체결 경위, 계약 당사자의 목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법적 의무를 부담하는 취지라고 볼 수 있을 특별한 사정이 있을 경우에는 법적 의무를 부담하는 문구라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계약서의 사소한 문구에도 해석상 다툼이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계약서의 내용은 어떻게 해석하여야 할까. 이에 관해 판례는 ‘계약서의 기재 내용을 부인할 만한 분명하고도 수긍할 수 있는 반증이 없으면 계약서에 기재된 문언대로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하여야 하지만, 당사자가 표시한 문언으로 그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 계약서에 나타난 법률행위의 해석이 문제되는 경우 그 문언의 형식과 내용, 법률행위가 이루어진 동기와 경위, 당사자가 법률행위를 통하여 달성하려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거래와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 그리고 사회일반의 상식과 거래의 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즉, 계약서에 기재된 문언의 내용이 갖는 의미가 명확하다면 그대로 해석하되, 불명확한 문언이 사용되었다면 여러 사정을 따져보아 그 문언이 갖는 의미를 도출하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에 계약서에 관한 분쟁을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법원에 접수되는 사건에 제출되는 계약서는 대부분 법적 전문성이 없는 일반인의 논의와 교섭을 거쳐 작성된다. 그렇기에 명확한 문언을 사용하여 정하여야 하는 내용에 관하여 두루뭉술한 문언이 사용되기도 하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 정하여야 할 내용에 관하여도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어물쩍 정하게 된다. 결국 계약서 내용만으로 ‘갑’이 A에 관한 법적 의무가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계약 당사자인 ‘갑’과 ‘을’의 속사정을 탐구해가며 계약서의 진정한 내용을 찾아가는 험난한 여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라틴어 법격언으로 ‘약속은 지켜져야만 한다’는 문장이 있다. 대다수 분쟁의 근원은 서로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런데 약속이 지켜지기 위한 전제로는 약속의 내용이 명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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