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 포구에서 시린 해풍을 맞던 한 병사가 있었습니다. 병사는 춘천으로 가는 시외버스 승차권을 주머니에서 꺼내 다시 들여다봅니다. 바람에 날아가 버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포구의 하늘로 눈송이까지 날리기 시작했지요. 갈매기처럼 끼룩거리는 울음을 흘리며 포구에 정박해 있는 어선들에서 나부끼는 깃발. 날개를 젓지 않고 회색빛 하늘을 떠다니는 갈매기들. 군모를 눌러 쓴 병사는 호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은 채 비린내마저 얼어버린 듯한 포구의 겨울 풍경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지요. 태백준령에서 몰려온 눈발은 점점 짙어져 막대기 네 개가 포개져 있는 병사의 계급장마저 지워버릴 정도였습니다. 80년대가 저물어가던 겨울 거진항이었지요.

그 병사는 결국 포구의 눈보라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의 음악다방으로 피신을 했지요.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좁은 나무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곳인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군복을 입은 병사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뮤직박스에서 틀어주는 노래를 듣고 있었어요. 그들도 아마 휴가를 떠나거나 휴가에서 돌아온 거겠지요. 연탄난로에 올려놓은 주전자에선 김이 솔솔 피어났고요. 그들에게 거진은 그런 곳이었지요. 사실 그들에겐 큰나루라 불리는 거진항은 관심 밖의 터미널이었지요. 어딘가로 갈 수 있는 여객선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들에게 거진항은 면회를 온 가족들과 함께 찾아가 회를 먹거나 명태 관련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 정도인 것이지요. 하여튼 음악다방 창가에 자리를 잡은 병사는 이제는 아예 포구를 지워버릴 정도로 쏟아지는 눈보라를 보며 병맥주를 홀짝홀짝 마셨습니다. 병사의 말년휴가 첫날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지요. 자그마한 종이쪽지에 신청곡을 몇 곡 적어 장발의 디제이가 앉아 있는 뮤직박스에 전달한 뒤 음악이 흘러나오기를 기다리며.
거진항은, 거진 앞바다는 사실 병사가 건봉산이나 까치봉에서 매일 내려다보던 풍경이었지요. 휴전선이 있는 그 산에서는 북쪽으로 금강산이, 동쪽으론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었어요. 병사는 그 산꼭대기에서 내무반의 텔레비전을 통해 88올림픽을 지켜보았고 대통령 선거에 투표권을 행사했습니다. 철조망을 덮어버릴 정도로 폭설이 내렸을 땐 거의 일주일을 눈을 치웠지요. 남쪽 땅에서는 멸종되었다고 알려진 산양이 비무장지대 절벽에서 무리 지어 살아가는 것도 보았습니다. 밤의 휴전선에서 야간투시경으로 바라보는 산양은 신비함 그 자체였습니다. 거진항 앞바다의 수평선엔 오징어잡이 배들이 밤새 집어등을 밝혔고 그 불빛이 가물거리다가 사라지면 일출이 시작되었지요. 거의 매일 동해 일출을 본 후유증 때문인지 전역을 한 뒤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밤을 새워 바다로 달려가는 자동차 행렬이 한동안 이해가 가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그 산꼭대기 밤의 초소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병사의 눈이 오래 머물렀던 곳은 바로 거진항을 밝히는 겨울밤의 불빛들이었습니다. 두 손바닥을 모아서 펼친 뒤 그 위에 오순도순 모여 있는 촛불처럼 따스해 보였으니까요.

거진항의 여름이 오징어라면 겨울은 당연히 명태와 양미리, 도루묵이겠지요. 문제는 명태입니다. 북방 어장의 주산물인 명태가 잡히지 않으면서 거진항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면 저는 다시 그 옛날의 병사로 돌아갑니다. 시외버스를 타고 진부령을 넘을 때 보았던 덕장에서 눈을 뒤집어쓴 채 황태로 변해가는 명태를 떠올립니다. 명태, 황태, 북어... 상태에 따라 다른 이름을 쓰는 물고기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늘 말년휴가를 맞아 춘천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그 병사는 명태의 어떤 이름과 닮았는지 궁금합니다. 생태, 동태, 코다리, 백태, 먹태, 짝태, 깡태, 노가리, 애기태... 시외버스터미널의 공중전화 앞에서 줄을 선 채 누군가와의 통화를 기다리던, 바다와는 또 다른 푸른 군복을 입었던 그 병사들은 명태의 여러 이름들 중 어떤 이름과 닮았을까요? 아 참, 그들은 음악다방에서 각자가 신청한 노래를 모두 듣고 어딘가로 떠났을까요?
일주일 뒤 병사는 하루 일찍 거진으로 돌아왔습니다. 거진은 여전히 겨울 포구였지요. 방파제로 나가 바닷바람을 맞던 병사는 자신이 돌아가야 할 눈 덮인 산꼭대기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지요. 포구의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 노가리와 소주를 주문했습니다. 연탄불 위에서 익어가는 노가리를 초장에 찍어 우적우적 씹었지요. 소주는 겨울 포구처럼 매웠고 노가리는 너무 태워 탄내가 났습니다. 춘천으로 떠났던 병사는 결국 아무런 소득도 없이 돌아왔던 것이지요. 대학교 이학년을 마치고 입대한 병사는 1, 2학년 교련과목에서 모두 두 번 F를 받았는데(민주화 운동도 아니고 출석일수 미달로) 그 결과 3개월 군복무 단축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었지요. 27개월 복무가 30개월 복무로 확 늘어났습니다. 병사는 학군단으로 찾아가 항변을, 아니 애원을 해보려고 춘천으로 갔지만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돌아왔던 것입니다. 내렸던 눈이 얼어가는 거진항에서 병사는 취해갔습니다. 부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가 명태를 잡을까도 잠시 고민했었지요(명태는 아무나 잡나!). 비틀거리며 음악다방을 찾아간 병사는 지난번에 듣지 못한 노래를 다시 신청했어요. 틀어주지 않으면 틀어줄 때까지 나가지 않겠다는 눈빛을 뮤직박스로 쏘아 보내며 맥주를 마셨습니다. 아마 밥 딜런과 존 바에즈의 노래였을 겁니다. 그러다 포구의 바람이 유리창을 흔드는 허름한 여인숙에서 잠들었습니다.

2024년 10월25일, 그 옛날의 병사는 차를 끌고 진부령을 넘어 대대리, 반암리를 거쳐 거진에 도착했습니다. 시월의 끝자락이었지만 여름처럼 덥더군요. 거진해수욕장의 북쪽, 민물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선 어부들이 투망을 던져 학꽁치를 잡고 있었습니다. 입이 뾰족한 학꽁치는 왜 목숨이 위태로운 바닷가로 붙는 것일까요? 한낮인데도 고깃배들은 수시로 포구를 드나들고 있어 제법 활기가 넘쳐나더군요. 어부들의 터미널인 포구엔 여기저기서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들이 많았고요. 먼바다로 떠나갔던 물고기들이 다시 연안으로 붙은 걸까요? 물고기가 붙는다는 말의 어감이 싱싱해서 즐거웠지요. 아, 하지만 요즘 포구엔 혼자서 먹을 만한 물고기 음식이 없어 조금 섭섭했습니다. 할 수 없이 시장으로 들어가 배를 채우고 시외버스터미널을 찾았습니다. 썰렁하더군요. 그 많았던 병사들은 어디로 떠나버린 걸까요? 천국 문을 두드리겠다는 노래를 틀어주던 음악다방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시월이 가고 겨울이 오면 다시 명태들이 넘쳐나길 바라며 그 옛날의 병사는 거진항을 떠났습니다. 〈끝〉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