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보=고성 산불 피해 이재민들에게 지급된 재난지원금을 둘러싸고 정부와 한국전력공사가 벌인 구상권 소송의 1, 2심 결과(본보 지난 22일자 5면 보도)가 크게 엇갈리면서 정부가 애당초 법적 근거가 미흡한 상황에서 소송을 강행해 혼란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등은 29일 한전과 정부 등이 서로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과 비용상환청구 소송의 항소심 판결문을 송달 받았고 2주 이내로 대법원 상고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지난 2017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에 구상권 청구 근거 조항이 마련된 이후 관련 소송이 진행된 것은 2019년 고성 산불이 처음이다. 항소심에서 정부가 완패한 가운데 대법원 판결까지 나오면 관련 법 개정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1, 2심 재판부는 재난안전법의 동일한 조항을 놓고 다른 해석을 내렸다. 1심을 맡은 춘천지법은 '사회보장적 성격의 재난지원금(학자금 면제, 자금 융자 등)'에 대해서도 비용상환 청구권이 발생한다고 보고 한전의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하지만 서울고법 춘천재판부는 "사회보장 부분에 대해서까지 비용상환 청구권을 인정하는 것은 자기책임의 원칙, 국가와 지자체의 재난으로부터의 국민 보호 의무 등에 반하므로 허용할 수 없다"며 한전 전부 승소로 판결을 내렸다. 또 재난지원금 중 사회보장 성격이 아닌 '대위변제 성격의 비용'에 대해서는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정부가 그 액수를 정확히 가려내지 못했다고 보았다. 특히 한전이 이미 이재민들에게 손해 배상금을 모두 지급해 구상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국가나 지자체가 언제든지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 원인 제공자로서는 신속한 보상을 할 필요가 없고, 구상권 행사를 기다리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았다.
앞서 고성 산불 이재민들은 지난 2021년 정부와 지자체에 구상권 청구 소송 철회를 요구하며 "정부가 이재민들을 위해 정책적 결단을 내리지 않고, 사법부에 판단을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이재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구상권 소송을 강행했지만, 항소심에서 패소했다.
고성 산불 이재민들은 "다시는 이런 혼란을 겪지 않게 애매모호한 법 조항 개정 등이 추진돼야 하고, 정부는 구상권 행사에 훨씬 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