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 대패를 인정한 유일한 전투’
‘병력 열세를 딛고 대한민국을 지킨 3일간의 방어전’
‘군인·시민·학생이 합심해 거둔 승리’
6·25 전쟁 발발 초기 벌어진 춘천지구 전투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들이다. 1950년 6월 25일부터 6월 27일까지 국군 제6사단이 북한군 제2군단에 맞서 전개한 방어 전투는 ‘춘천대첩’으로 불린다.
하지만 춘천대첩을 기념하는 공간은 춘천에 초라하게 남아있다. 1978년 의암호 인근에 조성된 ‘춘천지구 전적기념관’이다.

기념관 입구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년도순시 시 국가안보의식, 향토방위의식 고취를 위해 설립을 지시했고 친필로 ‘춘천지구 전적기념관’의 명판으로 써 주심으로 동년 11월 28일 설립되었다’고 쓰여있다. 강원특별자치도(이하 강원자치도)가 1981년 교통부로부터 이 건물을 무상 양여 받았고, 한국자유총연맹이 위탁 운영 중이다. 강원자치도가 지원하는 연간 예산은 관리인 인건비, 공과금, 소규모 수리비로 1억여원 정도. 지자체 건물의 개보수는 법적으로 국비 지원도 불가능하다. 이 곳에서 열리는 춘천대첩 기념 행사도 없어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도 열악하다.
2019년 연간 방문객은 13만3,805명 이었지만, 코로나19가 유행했던 시기에 급감해 지난해에는 6만9,369명이었고 올 상반기에는 1만7,260명에 그쳤다.
춘천대첩에 학도병으로 참전했거나, 춘천대첩의 역사적 의미를 후대에 알리길 열망하는 지역 원로들은 ‘춘천대첩 평화문화 기념관’ 건립을 주장하고 나섰다. 올해 정전 70주년을 맞아 시작된 일이다.

■‘민·관·군 합심의 역사’ 후대에 전해야=지난 달 28일, 춘천지구 전적기념관에서 만난 진성균(90) 6·25참전유공자회 강원도지부장. 춘천대첩에 학도병으로 참전했던 그는 제1·2전시실의 전시물을 하나씩 볼 때 마다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먼지가 쌓인 옥산포 전투 조형물, 당시 썼던 녹슨 무기들, 색이 바랜 춘천지구 전투 설명판 등이 전부였지만 기억은 생생했다. 열정적으로 전쟁 상황을 말하던 그는 “그런데 이것 만으로 누가 춘천대첩을 보고 느끼겠는가”라며 안타까워 했다.
병력면에서 4배, 화력면에서 10배 우세했던 북한군에 맞선 국군의 치열함, 주먹밥을 만들고 포탄을 날랐던 제사공장 여공들과 학도병들의 절박함을 느끼기에는 ‘빛 바랜 설명판 몇 점’은 역부족이었다. 진성균 지부장과 함께 방문한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육사 35기 출신인 김일환 무공수훈자회 강원도지부장은 “춘천대첩의 핵심은 군인뿐만 아니라 경찰, 민간이 합심해 대한민국을 지켰다는 사실”이라며 “전적 기념관으로는 이 정신을 담기에 부족하다”고 말했다.
30대인 강대규 변호사는 “3차원을 넘어 4차원 시공간을 만드는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전혀 맞지 않는 2차원 전시물 위주의 기념관”이라며 “청소년들도 전쟁의 실상과 평화의 중요성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체험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올해 구성된 춘천대첩 평화문화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의 위원들로 활동 중이다.
진성균 지부장은 추진위원장을 맡았다. 진 위원장은 “마음의 숙제로 남은 숙원 사업”이라고 말했다.

■관(官)은 소극적일 때 민(民)이 먼저 나서=춘천대첩 평화문화기념관 건립 추진 사업은 올해 철저하게 민간 중심으로 시작됐다. 지난 6월 29일 춘천대첩평화문화기념관 건립 범시민대회가 춘천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기조 강연을 맡은 한광석 강원대 평화학과 교수는 “21세기는 생태계가 붕괴되고, 기술혁신으로 인간성이 위협 받으며, 핵 전쟁 가능성으로 국제 평화가 흔들리는 시대”라며 “춘천대첩 평화문화 기념관은 이런 시대에 메시지를 주는 공간으로 새롭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범시민대회에는 춘천대첩에 학도병으로 참전한 언론계 원로인 박기병 재외동포신문방송편집인협회 이사장, 김선배 전 춘천교대 총장, 김미영 전 강원도경제부지사 등 170여명이 참석했다.
김미영 전 부지사는 “시민들이 춘천대첩의 의미를 알고, 자긍심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한데 민방위 교육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건립비로 수 백억원의 예산이 드는 사업에 지자체는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박철호 강원대 명예교수는 “춘천대첩 기념관 건립 추진 운동은 민간에서 시작됐지만,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지자체가 나서야 한다”며 “민·관·군이 다시 한번 합심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