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혈액암 투병 '국민 배우' 안성기 74세 일기로 별세…69년 연기 한국 영화史 산증인

아역부터 천만 영화까지…'투캅스'·'인정사정 볼것 없다' 등 170여편 출연
남우주연상 등 40여차례 수상…영화계 권익보호·유니세프 등 사회 활동

◇국민배우 안성기가 5일 별세했다. 향년 74세.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한 안성기는 2020년대 초까지 60여년 동안 140여편에 출연한 '국민 배우'다.그는 2019년부터 혈액암으로 투병 생활을 이어왔고 2022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처음 이 사실을 털어놨다. 투병 중에도 2023년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식, 4·19 민주평화상 시상식 등에 모습을 드러내며 복귀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사진은 지난 2007년 '제44회 대종상 영화제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안성기. 2026.1.5 [연합뉴스 자료사진]

속보=혈액암으로 투병 생활을 이어오던 '국민 배우' 안성기가 5일 향년 74세 일기로 별세했다.

고(故) 안성기 배우 장례위원회는 이날 오전 9시께 안성기가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던 중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음식물이 목에 걸린 채 쓰러져 중환자실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입원한 지 6일 만이다.

2019년부터 혈액암 투병을 해온 안성기는 최근 회복에 전념하며 작품 복귀를 준비해왔다.

안성기는 2020년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다시 검진받는 과정에서 암 재발이 확인됐다. 2020년 10월 입원한 사실이 알려지며 건강 이상설이 불거졌고 2022년 언론 인터뷰를 통해 혈액암 투병 사실을 밝혔다.

2022년 9월 서울 CGV 압구정에서 열렸던 '배창호 감독 특별전' 때 관객들과 인사를 나눴던 안성기는 "40년 만에 이 영화를 또 본다는 건 굉장히 가슴을 설레게 한다"며 소감을 밝혔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자리를 떠야 했다. 이후 건강 이상설이 불거졌고, 소속사가 혈액암 투병 사실을 공개했다.

안성기는 "병원에서 조혈모세포 치료를 하자고 했는데, 그것까지 할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 들어서 고사를 했다. 고사할 문제가 아니었는데. 그 과정(치료)을 다시 했다. 아주 힘들었다"라고 당시 고통을 토로했다.

안성기는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배우로서 뛰어난 연기력은 물론 바른 품행으로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는 오랜 시간 카메라 앞에 서 왔으나 사건·사고와 거리가 멀었다. 언제나 반듯해 보였고, 스크린을 통해서는 유쾌함과 감동을 선사하는 배우로 인정받았다. 반세기 넘게 배우로서 살아온 삶을 "후회한 적은 없다"면서도 '국민배우'라는 호칭은 부담이 됐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그 수식어 하나가 인생살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회고했다.

"(배우라는 말 앞에) '국민'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니 확실히 부담되긴 했어요. 거기에 맞는 무언가를 해야 할 거 같고요. 그런데 결국 '국민배우'라는 호칭은 저를 좋은 쪽(방향)으로 안내를 해줬다고 할까요."

암 투병 이후 사실상 연기 활동을 중단했지만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사태 이전 촬영을 마쳤던 '아들의 이름으로', '카시오페아', '한산: 용의 출현', '탄생' 등 네 작품을 한꺼번에 관객에게 선보였다. 가장 최근 스크린에 오른 '탄생'에서는 '수석 역관' 역을 맡아 관객과 조우했다.

그는 배역에 대한 갈증은 더는 없다고 했다. 수많은 작품 속에서 워낙 다양한 캐릭터를 맡아왔기에 이제는 주어진 역할, 거기에 맞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안성기는 2023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건강이 아주 좋아졌다"며 "새 영화로 찾아오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같은 해에는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식에 박중훈, 최민식과 함께 참석해 큰 박수를 받았다. 또한 4·19 민주평화상 시상식 등에 모습을 드러내며 복귀에 대한 의지를 밝혀왔다.

◇국민 배우 안성기가 5일 별세했다. 향년 74세.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한 안성기는 2020년대 초까지 60여년 동안 140여편에 출연한 '국민 배우'다.사진은 지난 2023년 4월 1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4·19 민주평화상 시상식에서 국기에 경례하는 배우 안성기 씨. 2026.1.5 [연합뉴스 자료사진]

1952년생인 안성기는 만 5세때인 1957년 영화 제작자였던 부친 안화영 씨와 친구 사이였던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에 아역배우로 출연하며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1959년 출연한 김기영의 작품 '10대의 반항'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영화제에서 특별상을 받는 등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받았다. 동성고에 진학하며 학업으로 연기를 그만두기까지 10년간 70여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고교를 졸업한 안성기는 한국외국어대 베트남어과에 진학했다. 이후 ROTC로 군 복무를 마치고서 전공을 살려 해외 취업을 노렸으나 당시 '베트남 전쟁' 여파로 인해 바랐던 일을 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고인이 영화계로 다시 관심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안성기는 10년 만에 성인 배우로서 카메라 앞에 다시 섰다.

영화계 복귀 첫 작품은 김기 감독의 '병사와 아가씨들'(1977)이었다. 이후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시동을 건 안성기는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1980)로 배우로서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국민 배우 안성기가 5일 별세했다. 향년 74세.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한 안성기는 2020년대 초까지 60여년 동안 140여편에 출연한 '국민 배우'다.영화 '인정사정 볼것 없다'·'투캅스'·'라디오스타'·'실미도' 등으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진은 배우 안성기 출연작 '고래사냥'의 한 장면. 2026.1.5 [한국영상자료원 KMDb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국민 배우 안성기가 5일 별세했다. 향년 74세.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한 안성기는 2020년대 초까지 60여년 동안 140여편에 출연한 '국민 배우'다.영화 '인정사정 볼것 없다'·'투캅스'·'라디오스타'·'실미도' 등으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진은 배우 안성기 출연작 '투캅스2'의 한 장면. 왼쪽은 배우 박중훈. 2026.1.5 [한국영상자료원 KMDb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국민 배우 안성기가 5일 별세했다. 향년 74세.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한 안성기는 2020년대 초까지 60여년 동안 140여편에 출연한 '국민 배우'다.영화 '인정사정 볼것 없다'·'투캅스'·'라디오스타'·'실미도' 등으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진은 배우 안성기(왼쪽) 출연작 '하얀전쟁'의 한 장면. 2026.1.5 [한국영상자료원 KMDb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구도자의 만행을 그린 '만다라'(1981·임권택 감독), 빈민으로 나온 '꼬방동네 사람들'(1982·배창호), 거지 '민우'로 분한 '고래사냥'(1984·배창호), 후배 박중훈과 함께 한 '칠수와 만수'(1988·박광수) 등이 1980년대 안성기를 주목하게 한 작품들이다.

1990년대 들어 한국 영화가 산업자본을 만나며 큰 변화를 겪었듯이 그는 다채로운 캐릭터를 맡으며 최고 전성기에 올랐다.

'남부군'(1990·정지영)을 시작으로 안정효 소설을 원작으로 한 '하얀전쟁'(1992·정지영), 한국 최고의 코미디 영화로 꼽히는 '투캅스'(1993·강우석), '그대 안의 블루'(1992·이현승), '태백산맥'(1994·임권택), '퇴마록'(1998·박광춘),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이명세) 등 출연 작품마다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2000년대에도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며 영화계 맏형 역할을 했다.

인상적인 액션 연기로 첫 남우조연상을 받은 '무사'(2001·김성수), 한국 최초의 천만 영화 '실미도'(2003·강우석), 박중훈과 또 한 번 콤비를 이뤘던 '라디오스타'(2006·이준익) 등 흥행 보증 수표이기도 했다.

◇배우 안성기가 지난 23일 서울 중구 신영균예술문화재단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2.24
◇국민배우 안성기가 지난 23일 서울 중구 신영균예술문화재단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2.24 사진=연합뉴스

안성기는 2010∼2020년대 과거보다 배역 비중이 줄었지만, 여전히 촬영 현장을 지키며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다.

'석궁 테러' 실화를 다룬 '부러진 화살'(2012·정지영), 한 남성의 연모 속에 인생과 사랑·죽음을 표현한 '화장'(2015·임권택)은 베테랑 배우로서 연기가 돋보인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가 마지막으로 선보인 작품은 김한민 감독의 '노량: 죽음의 바다'(2023)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을 보좌한 어영담 역을 맡았다.

안성기는 아역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69년간 170편 넘게 출연하며 영화계를 이끌었다.

2017년 데뷔 60주년을 맞아 영화계가 안성기의 영화 인생을 돌아보는 특별전을 여는 등 각별하게 예우하기도 했다.

오랜 배우 생활만큼이나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1980년 '바람불어 좋은날'로 대종상영화제 신인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국내 각종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과 연기상 등을 40여차례 받았다.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에 걸쳐 주연상을 받은 배우는 안성기가 유일하다.

그는 '기쁜 우리 젊은날'(1987·배창호)과 '하얀전쟁'으로 아시아태평양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두차례 수상했다.

2013년에는 대중문화예술 분야 최고 영예인 은관문화훈장을 받았고, 2024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됐다.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 스크린쿼터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을 지내며 영화계 권익 보호에도 앞장섰으며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 등으로서 사회적 활동도 펼쳤다.

안성기는 친근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1983년부터 38년간 동서식품 커피 맥심의 최장수 모델로도 활동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된다. 유족으로는 아내 오소영 씨와 아들 다빈·필립 씨가 있다.

장례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한국영화배우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원로배우 신영균이 명예위원장, 이갑성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배창호 감독·신언식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직무대행·양윤호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이 위원장을 맡는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국민 배우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한다. 운구는 배우 이병헌·이정재·정우성·박철민 등이 맡고, 조사는 배창호 감독과 정우성이 낭독한다.

또, 정부를 대표해 문화체육관광부 최휘영 장관이 이날 오후 6시 30분께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을 방문해 대중문화예술 분야의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전달한다.

문체부는 "고인은 세대를 아우르는 연기를 보여주며 한국영화와 생애를 함께해 온 '국민배우'로 평가받아 왔다"며 "1990∼2000년대 한국영화의 대중적 도약과 산업적 성장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한국영화의 사회적·문화적 외연 확장에 기여했다"고 추서 배경을 설명했다.

◇국민 배우 안성기가 5일 별세했다. 향년 74세.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한 안성기는 2020년대 초까지 60여년 동안 140여편에 출연한 '국민 배우'다.사진은 지난 2021년 10월 22일 강원 강릉아트센터에서 열린 제3회 강릉국제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한 배우 안성기 씨. 2026.1.5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대한민국 영화사와 문화예술 전반에 큰 발자취를 남기신 안성기 선생님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전한다"며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았던 선생님의 뜨거운 열정을 오래도록 기억하겠다"고 전했다.

이어 "'영화를 꿈으로, 연기를 인생으로 살아왔다'는 말씀처럼 선생님께 연기는 곧 삶이었고, 그 삶은 수많은 이들의 위로와 기쁨, 그리고 성찰의 시간이 되어줬다"며 "화려함보다 겸손을, 경쟁보다 품격을 보여주신 삶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아울러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감동과 울림으로 늘 우리 곁에 머물러 주시리라 굳게 믿는다"며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의 희로애락을 진정성 있게 그려낸 배우, 이웃 같은 친근한 배우로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배창호 감독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우리 영화계를 위해서 할 일이 많은데 이렇게 일찍 떠나게 돼서 애석하기 그지없다"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배 감독은 "그동안 함께 좋은 작품들을 할 수 있어서 든든했고, 감사했다"며 "그가 남긴 주옥같은 작품들을 관객분들과 함께 오래오래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도 통화에서 "명실상부한 국민 배우인데 너무 일찍 타계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애통해 했다.

김 전 위원장은 고인이 부산국제영화제 개·폐막식 사회자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젊은 영화인 육성에 주력한 점 등을 언급하며 "진짜 국민배우"라고 평했다.

이어 "요즘처럼 한국 영화가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사실 앞장서서 해결할 수 있는 배우인데…"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안성기에게 대종상영화제 신인상을 안겨 준 '바람불어 좋은날'(1980)의 이장호 감독은 "안성기는 굉장히 어질고 착한 사람이었다"며 "저는 평소에 스스로를 '법 없이는 살기 힘든 사람'으로, 안성기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떠올렸다.

이 감독은 그간 한 번도 공개된 적은 없지만 고인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곤 했다고 전했다.

그는 "배우로서도 그렇지만, 영화에 대한 예술적인 능력이 대단히 좋았다"며 "한 번도 발표는 안 했지만, 안성기가 쓴 시나리오를 읽고 감탄한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영화 '남부군'(1990)을 시작으로 '하얀 전쟁'(1992), '부러진 화살'(2012) 등에서 고인과 호흡을 맞춘 정지영 감독은 통화에서 "상당히 만감이 교차해서 정리해서 얘기하기가 힘들다"며 깊은 슬픔을 나타냈다.

그는 "우리는 안성기 씨가 한국 영화사 속에 어떤 자리매김을 했던 사람인가를 지금부터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안성기 씨에 대한 정리를 남아 있는 영화인들이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고인과 '칠수와 만수', '인정사정 볼것 없다', '라디오 스타' 등 대표작을 함께한 배우 박중훈은 지난해 출간한 에세이에서 안성기와의 특별한 인연을 언급하며 "선배님은 나의 스타이자, 존경하는 스승이자, 친구 같은 존재"라고 적었다.

박중훈은 혈액암 투병 중이던 안성기를 찾아가 '선배님이 계셔서 제 인생이 참 좋았다'고 말했고, 말없이 웃는 안성기를 보며 눈물을 참느라 힘들었다는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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