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땅 팔겠다는 집 주인, 복구 포기한 건물주 … 오갈 데 없는 세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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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산불 이재민 ‘일상 회복’ 돕자]

(9) 세입자 소외된 복구책

주거비 지원액 세입자 900만원이 전부
펜션 임차인, 30~40대 청년 많아 막막

◇2일 강릉 저동에 설치된 이재민 임시조립주택. 사진=신하림기자

강릉 경포 산불 이재민들이 거주할 임시 조립식 주택 설치 공사가 한창이었던 지난 2일. 8년간 세 들어 살던 집이 타 버린 안모(68)씨는 이날 오전 뒤늦게 공공 임대 아파트를 신청했다. 임시 조립식 주택 설치를 동의해준다던 소유주가 돌연 "땅을 팔 테니 정리해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안씨는 48년째 경포에서 살며 궂은 일로 생계를 이어왔다. 그는 "오는 10일이면 임시 거처(펜션)를 떠나야 하는데 공공임대주택이 안 되면 갈 곳이 없다"고 눈물을 흘렸다. 특별재난지역 선포에 따라 집 주인이 받은 주거비는 4,000만원이고, 세입자인 안 씨가 받아든 돈은 900만원이 전부다.

◇2일 강릉 저동의 산불 피해 주택. 세입자가 살던 곳으로 잔해물 정리도 이뤄지지 않았다. 사진=신하림기자

경포 산불 이재민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세입자(임차인)'들이 복구 대책에서 소외되고 있다.

4일 강릉시에 따르면 주택 피해 이재민 274세대 가운데 83세대에 세입자가 있다. 산불 피해를 인정받은 사업장(대부분 펜션) 85곳 가운데 34곳은 임차인이 있다. 현재까지 파악된 세입자 이재민은 117명이다. 현행법상 산불로 주택 피해를 입었을 때, 소유주가 받는 지원금은 각각 4,000만원(전파), 2,000만원(반파)이지만 세입자는 900만원이다.

세입자 이재민 중에는 펜션을 빌려 사업하며 강릉에 정착하려던 30~40대들이 많다.

2년 전 경기도를 떠나 강릉에서 건물을 빌려 애견동반펜션을 운영했던 이기동(35)씨. 10실 중 9실은 객실로, 1실은 살림집으로 쓰고 있었다. 전세금을 빼서 리모델링을 한 펜션이지만 최근 건물주로부터 "복구 계획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건물주가 60대 고령이고, 이미 받은 대출 금액이 많아 복구를 포기했다. 경포에는 빌려 쓸만한 펜션 건물도 없는 상황이다.

이씨는 "소상공인 이재민 대출(최대 3억원)을 지원 받아 업종을 바꿀까 고민했지만, 실패 부담이 큰 결정"이라며 "어떻게 재기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건물주 중에는 외지인도 많지만, 세입자 대다수는 강릉 주민들이다. 이씨는 비슷한 처지의 세입자 이재민들이 모인 분과 모임을 운영 중이다.

최양훈 강릉산불 비상대책위원장은 "펜션 건물을 다시 지으려면 십 수억, 수 십억원이 드는데 소상공인 대출금 지원액은 최대 3억원"이라며 "외식·숙박업은 받기 어려운 신용보증기금 특례보증(최대 5억원) 요건이 완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산불로 전파된 강릉 경포의 한 펜션 건물. 복구 건축비는 수십억원인데, 소상공인 대출 최대 지원금액은 3억원이어서 막막함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신하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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