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강원포럼]6·25전쟁과 경찰의 헌신

김재규 강원지방경찰청장

소양강댐을 가다 보면 시민들의 물놀이와 휴식을 위해 마련한 시민의 숲 한켠에 '호국영웅 추모상'이 있다. 춘천경찰서 내평지서 고(故) 노종해 경감 등 11인의 숭고한 넋을 기리는 곳이다. 이들은 70년 전 6·25전쟁 당시 3,000여 명이 넘는 북한군 2사단에 맞서 전원 전사하면서 춘천지구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경찰관들은 6·25전쟁 당시 전투복도 없이 길가에서 주운 철모에 '경찰'이라는 글씨를 스스로 새겨 넣어 쓰는 등 기본적인 전투 장비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열악한 상태였다. 하지만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만을 가슴에 품고 투혼을 불사르며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투신했다.

1950년 6월25일 새벽 3시께 정동진 등명 해안초소에서 경계근무 중이던 강릉경찰서 고 전대욱 경사(당시 27세)는 북한군 대규모 부대가 해안가로 상륙하는 것을 발견하고 초동 대응했으나 북한군의 사격을 받고 초소에서 전사하면서 6·25전쟁 최초 전사자로 기록됐다.

고 전대욱 경사를 시작으로 전 경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만7,628명의 경찰관이 죽거나 다쳤다. 이는 육군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희생으로 경찰이 국가를 지키기 위한 사명감을 갖고 전·후방 없이 전쟁에 목숨 바쳐 투쟁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전쟁 초기인 1950년 7월에는 전투경찰 8대대 1중대장이던 고 김해수 경감(당시 26세)과 47인의 결사대가 영월화력발전소 탈환 작전을 수행하던 도중 북한군 5사단 병력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 김 경감을 비롯한 24명의 경찰관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적의 기습공격을 받고 위험에 빠진 2,000여명의 지역 주민과 애국인사를 안전하게 대피시키면서 적과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던 중 목숨을 잃은 경찰도 있다. 적의 총탄에 의해 복부 관통상을 입고 젊은 나이에 산화한 춘천경찰서 양구파견대 중대장 고 조관묵 경감(당시 23세)이다. 이처럼 38선을 경계로 하고 있던 강원경찰은 수많은 경찰관이 전쟁 중에 먼저 세상을 떠났다.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는 경찰의 최우선 임무이다. 이는 치열한 전투 현장에서 고귀한 목숨을 바친 선배 경찰관들이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지키고자 했던 경찰관으로서 존재 가치였던 것이다.

그동안 강원경찰은 경찰의 뿌리를 찾기 위해 관련 조직을 정비하고 인원을 보강해 6·25전쟁뿐만 아니라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희생한 경찰을 발굴하고 현양하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저 멀리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김구 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 경찰과 독립운동가·광복군 출신 경찰관 14명을 발굴했다. 이어 1963년 6월 묵호역에서 시민을 구하고 열차에 치여 순직한 고 심연수 경사까지 그들이 보여준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참된 경찰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올해도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지난 24일 북한군에 맞서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 춘천 내평전투 호국영웅 11인의 경찰관을 추모하는 자리를 가졌다. 지난 70년 동안 동료와 가족을 잃은 슬픔 속에 살아온 참전경찰과 유가족들의 가슴속에 응어리진 삶의 고뇌를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나라와 국민을 위해 희생한 선배 경찰관들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국민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공동체를 수호하는 경찰의 역할을 정립하는 것이 후배 경찰관들이 이뤄야 할 사명일 것이다.

강원의 역사展

이코노미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