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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HOT) 이 사람]“세 살 때 큰 열병 앓고나서 미래 꿰뚫어보는 능력 생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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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에서 온 금발의 점쟁이 김영미(인제)씨

요즘 블로그나 SNS에는 '인제에 타로점을 잘 보는 러시아 여자'가 폭발적인 인기다. 두메산골 인제에, 그것도 러시아 여자가 점을 본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어떤 사연을 갖고 있길래 이역만리 타국까지 와서 점을 봐 주고 있는걸까.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어 그녀를 찾은 것은 늦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18일 오후. '타로카드점'이라고 작은 간판이 걸려 있는 가게의 겉모습은 소박했다. 가게는 인제군 남면 어론리 대로변에 있어 헤매지 않고 찾을 수 있었다.

어릴 적 동네 대소사 먼저 예견

예지능력 할머니에게 물려받아

선보기 전날 밤 결혼하는 꿈 꿔

꿈에서 본 남자가 현재의 남편

■이름이 '김영미'인 키르기스스탄 여인=미리 취재 약속을 잡은 만큼 가게를 방문하니 중년의 남자가 나와 취재팀을 반갑게 맞았다. 그는 타로점을 보는 '러시아 여자'의 남편이라고 소개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타로점을 보는 여성의 고향은 러시아가 아닌 러시아어를 쓰고 있는 키르기스스탄이었다.

남편의 소개가 끝나자 뒤따라 나온 금발의 외국인 여성이 청량한 고음의 서툰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를 건넸다. 우리를 처음 안내한 그녀의 남편 길광수(52)씨는 인제군 남면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 토박이다. 그들은 국제결혼으로 인연을 맺은 부부다. 산으로 둘러싸인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의 특성이 낙천적이듯 그녀는 밝은 표정으로 자신이 손님들에게 타로점을 봐주는 방으로 취재팀을 안내했다. 그녀가 명함을 건넸다. 명함에는 '김영미'라고 쓰여 있었다. 결혼과 함께 한국 이름으로 개명하기 전까지 그녀의 키르기스스탄 이름은 '자키로바 하니파'였다. 1972년생 올해 만 48세다. 궁금한 게 많다고 했다. 한국사람과 결혼한 것도, 타로점을 보게 된 사연도, 과거를 맞추고 미래를 예지할 수 있는 능력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도.

■큰 열병 앓고 난 후 천사 나타나=그녀는 3세 전후에 큰 열병을 앓았다고 한다. 몸의 열이 40도 가까이 오르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가족들은 모두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약도 써 볼 틈도 없이 애만 태우고 있었지만 놀랍게도 그녀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다. 그 무렵이었다. 그녀의 앞에는 천사가 자주 나타났다고 한다.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에게만 보이는 천사는 때때로 그녀에게 보이지 않는 곳을 보여주기도 했다. “어느 날이었어요. 하루는 천사가 제 눈앞에 나타나 마을의 어떤 분이 우물에 빠지는 모습을 보여줬어요. 그래서 저는 어머니께 그분이 우물에 가면 안 된다고 말했죠. 하지만 사람들은 어린 제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나 봐요. 그런데 그분은 우물에 갔고 천사가 보여준 대로 우물에 빠져 큰 부상을 입는 사고를 당했어요.” 반대로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좋은 일도 있었다고 한다. 동네에 말과 양, 소, 염소를 기르는 집에서 양을 잃어버렸는데 천사가 나타나 알려주는 바람에 찾게 됐다고 소개했다.

김영미씨가 말했다. “아무래도 열병을 심하게 앓았을 그때 과거와 미래를 보여주는 천사가 제 몸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이런 능력에 대해 할머니에게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할머니도 그녀와 같이 동네 사람들에게 점을 봐 줬다고 회상했다.

■꿈에서 본 남자, 지금의 남편=키르기스스탄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녀는 졸업하고 교회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며 종교단체 활동을 했다. 혼기가 꽉 찬 그녀는 결혼을 고민하게 됐다. 그때 한 종교단체에서 외국인 남성과 부부의 인연을 맺어주는 행사를 보고 거기에 참가하게 된다. 그때가 2002년이었다.

서울에서 선을 보는 날짜가 잡혔다. 선을 보기 전날 밤 결혼하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천사가 데려온 남자가 지금의 남편 길씨였다.

맞선 자리에 나간 그녀는 몇 번이고 남성들에게 퇴짜를 놨다. 수많은 맞선 상대가 지나고 마지막 맞선 시간이 왔다. 이 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테이블에 마주한 남성이 어젯밤 꿈에서 천사가 데려온 남성과 똑같이 생긴 것이 아닌가. 김영미씨는 당장 결혼을 결정했고 지금도 남편 길광수씨가 천생연분이라고 한다. 슬하에 아들 둘을 두고 있는 부부는 지금도 한순간도 서로 없어서는 안 되는 금실을 자랑한다.

■타로점 본 후 2~3시간 쉬어야=그녀는 2014년 다문화센터에서 취미로 사람들에게 타로점을 봐주면서 잊었던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신통한 능력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타로점 집을 차린 것은 2017년이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다.

가게 운영의 철칙이 있다. 무리하게 오는 대로 손님을 모두 받지는 않는다. 철저하게 예약제로 운영한다. 그녀에게 찾아오는 천사들이 장면을 잘 보여줄 때면 쪽집게처럼 맞추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빗나갈 때도 있다. 점 보는 사람의 과거나 미래를 잘 맞추면 몸은 탈진상태가 된다. 2~3시간 푹 쉬어야만 몸이 다시 회복될 정도로 점을 보는 일도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한 직업이라는 게 그녀의 귀띔이다.

■타로는 '삶의 활력소'=웃지 못할 일도 있다고 한다. 어느 날은 중년의 여성과 중년의 남성이 30분 차이로 찾아왔다. 부부 사이인 이들 중 먼저 찾아온 부인은 남편이 바람을 피는 것 같은데 맞는지 점을 봐달라고 했다. 이어 찾아온 남편은 한 여성과 왔는데 이 여성이 앞서 찾아온 부인이 의심한 바람피우는 상대방이었던 것. 남편의 외도를 확인한 부인은 상대 여성과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고 가게도 아수라장이 됐다고.

그녀에게 점은 무엇일까. “삶을 살아가는 활력소라고 생각해요.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지만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기회를 주는 게 점이 아닐까요. 예를 들어 승진운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은 승진을 위해 더 열심히 하고 조심하게 되겠지요.”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그녀가 말했다. “내년에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즐거운 마음으로 가게를 나왔다.

인제=김보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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