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양 미천골 선림원터 보물
비문 글자는 中 왕희지 작품
양양 미천(米川)골에 선림원(禪林院)터가 있다. 여기에 남아 있는 석탑, 부도, 석비, 석 등은 모두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절에서 쌀 씻은 물이 내려간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 미천이라 하니 절의 규모와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
보물 중 하나인 홍각선사비는 거북이 모양 비받침인 귀부(趺)와 구름과 용이 새겨진 비머리만 본래 모습이다. 비문이 새겨진 비신(碑身)은 조선 시대에 이미 파손되었고, 남은 비편이 국립춘천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2008년 비신을 복원해 지금 절터에 가면 비받침, 비신, 비머리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비편에는 '홍각선사비명 병서(弘覺禪師碑銘 幷書)'라는 제목에서 시작해 1~15행까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전해진 탁본과 비편 내용을 보면, 홍각선사는 경주 사람으로 17세에 출가한 후 불가에 모범이 되는 높은 선사로 명망이 높았다. 법랍 50세로 880년에 입적했는데, 헌강왕이 애도하고 많은 백성이 슬퍼하였다. 비는 886년에 왕실이 후원해 세워졌다. 홍각선사는 도의선사와 염거화상을 이어 설악산 일대의 선종의 맥을 이은 고승이며 선림원을 대대적으로 중수하였다. 홍각선사의 입적 이후 선림원은 900년 전후에 큰 홍수로 인한 산사태로 매몰돼 폐사됐다고 한다.
지난해에 선림원지에서 높이 40㎝의 큰 금동불상이 출토(강원일보 2015년 10월15일자 보도)되었다. 광배 일부와 불상 오른발이 남아 있는 대좌까지 더해지면 55㎝가량 된다. 발굴조사자는 9세기 초에 경주에서 만들어져 선림원으로 전해진 불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2~3년 후 보존처리가 끝나면 홍각선사 비편과 함께 전시돼 당시 선림원의 큰 위상을 관람객들에게 잘 알려주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비문에 새겨진 글자는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니, 서예 공부하시는 분들은 눈여겨보시길 바란다.
<김동우 국립춘천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제작연도 : 통일신라 886년
■크 기 : 가로 51.4㎝, 세로 57.9㎝
■소 장 처 : 국립춘천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