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문화재로 보는 우리 역사]11.상평통보-하늘 둥글고 땅은 사각형 옛 천문사상 본떠 만들어

문화재로 보는 우리 역사-강원일보·국립춘천박물관

조선시대에 널리 유통되었던 돈은 상평통보(常平通寶)였다. 숙종 4년(1678년)부터 사용된 상평통보 1개는 1푼[文]이었고, 10푼이 1전(錢), 10전이 1냥(兩), 10냥이 1관(貫)이었다. 우리 옛 속담에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는데, 천 냥은 상평통보 10만 개다. 상평통보 가치는 은의 가격과 비교해 결정했는데, 은 1냥은 동전 400푼(4냥)이었고, 쌀은 10말[斗: 1섬]로 하였다. 쌀 한 섬을 상평통보 400개로 살 수 있었다는 말이다. 당시 쌀값은 풍년과 흉년 등의 여러 변동 때문에 들쑥날쑥했는데, 18세기 서울에서의 평균 쌀값은 한 섬에 5냥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쌀 한 섬을 사려면 동전 500개 정도를 가져가야 하니 여간 불편했을 것이다. 그래서 숙종 5년(1679년)부터는 당이전(當二錢: 2푼)이 주조되었고, 고종 3년(1866년)에는 유명한 악화(惡貨)인 당백전(當百錢)까지 발행되었다.

상평통보는 지금의 동전처럼 둥글지만 가운데 사각 구멍이 뚫려있다. 이것은 하늘을 둥글고 땅은 사각형이라고 여긴 옛 사람들의 천문사상을 돈을 만들 때 본뜬 것이다. 옛 동전을 엽전(葉錢), 즉 '나뭇잎 모양의 돈'이라 한 것은 그 제조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돈을 주조하던 틀인 거푸집이 나뭇가지에 여러 개의 잎이 달린 모양을 하고 있어서, 쇳물이 이 안에서 굳으면 전체적인 모양이 나뭇가지에 매달린 잎처럼 보여 엽전이라 부른 것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돈은 한국조폐공사에서 만들어낸다. 조선시대에서는 여러 관청에서 주전소(鑄錢所)를 설치해 상평통보를 주조했다. 그래서 상평통보 뒷면에 주전소를 표시하는 기호가 있는데, '江(강원감영)', '春(춘천관리영)', '平(평안감영)', '京(한성부)' 등이 그 예다.

오색약수가 있는 주전골은 불법적으로 동전을 주조했던 곳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2006년에 진위가 의심되는 엽전이 발견되기도 했다(강원일보 2006년 9월5일자 기사). 1983년도에 춘천 후평동에서 발견된 동전용범이 지금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강원도에서는 강원감영과 더불어 춘천관리영과 원주관리영에서 동전을 주조했다. 따라서 이 동전용범은 춘천관리영의 것이라 추정할 수 있겠다.

<김동우 국립춘천박물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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