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는 신석기 시대에 흙을 빚고, 이를 구워 단단한 토기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곡식 등을 저장하거나, 음식을 조리할 때 토기를 사용하였다. 이후 기술의 발달로 보다 높은 온도로 토기를 굽고, 표면에는 유약을 발라 아름다운 자기를 만들었다. 우리 선조들도 고려청자, 조선백자와 같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수한 자기를 생산하였다.
조선의 큰 백자항아리 중에 18세기 이후 만들어진 둥근 것이 달항아리다. 배가 둥근 항아리에는 주로 짧은 시간에 먹을 김치나 된장, 술 같은 것을 담았다. 경기도 광주 분원에서 제작된 달항아리는 궁중의 제사나 잔치에 쓸 술을 빚거나 저장하는 데 쓰였을 것이다.
달항아리는 대개 높이가 40㎝ 이상으로 크며, 높이와 몸체 지름이 대략 1대1 정도다. 항아리를 한 번에 물레질을 하여 만들면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주저앉아 버린다. 때문에 위아래를 따로 만든 후 이를 붙여서 완성하였다. 몸체 중앙 부분을 붙여서 만들어, 완전한 원형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둥글다.
조선 성종 임금은 백자로 만든 술잔을 승정원에 내려주면서, '맑고 티가 없어 사람에게 비유하면 공정하고 바르다. 한 점의 허물도 없고, 선하지 못한 일들을 용납하지 않는다'라 하였다. 즉, 백자의 맑은 순백의 자태를 좋아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푸른 기운을 머금은 순백 조화와 천연덕스러운 원형의 달항아리는 우리에게 마음 깊은 곳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을 주는 듯하다.
재일교포 고(故) 이병창 선생이 기증한 달항아리는 다른 것보다 더욱 일그러져 있다. 이병창 선생은 조금 못생긴 달항아리를 사용한 조상들의 너그러움을 즐기신 듯하다. 선생은 일본에서도 이름난 도자기 소장가였다. 오사카에 있는 동양도자박물관에 수집한 도자기를 기증하면서 제일 아꼈다고 한 달항아리를 고국에 보냈다. 불쾌지수가 올라가는 더운 여름, 시원하고 맑은 달항아리를 보면서 너그럽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김동우 국립춘천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제작연 도 : 17세기 후반 ~18세기
■소 장 처 : 국립춘천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