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의 모습을 본떠 만든 불상은 기본적으로 출가(出家)의 모습을 하고 있어 다른 장식물이 없다. 대신 경전이 전하는 특별한 외모가 표현된다. 정수리에 혹처럼 나온 육계, 곱슬머리인 나발(髮), 목에 있는 세 개의 주름인 삼도(三道), 머리와 몸에서 나오는 빛을 표현한 광배(光背)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깨달음을 얻을 자격이 있지만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은 왕자 시절의 싯다르타 모습을 반영한다. 때문에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귀고리, 목걸이, 팔찌 등의 장신구를 하고 있다.
자비로서 중생의 어려움을 구제하는 관음보살을 신앙하는 것이 널리 퍼져 있다. 지혜로 중생을 구제하는 대세지보살,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하는 지장보살, 지혜와 실천을 상징하는 문수와 보현보살 등 여러 보살이 있다. 이 중 관음보살은 대개 머리에 쓴 보관에 화불(化佛)이 새겨지고 손에는 정병이나 연꽃을 잡고 있다.
이 금동관음보살좌상은 머리에 쓴 보관에 부처님이 있어 관음보살임을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가부좌로 앉은 다리 위에 손바닥을 위로 해 포개 놓은 선정인(禪定印)을 하고 있다. 손바닥 가운데를 작은 사각형 모양으로 평평하게 했는데 아마도 정병이 놓였을 것이다. 보살이므로 보관, 귀고리, 화려한 드리게 장식이 가슴까지 늘어진 목걸이 등의 장신구를 착용했다. 옷은 불상에서 많이 표현되는 가사를 입고 있다. 이러한 형식의 보살상은 고려 말과 조선 초에 유행했다.
1999년 미국인 찰스 슈미츠 부인이 이 보살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슈미츠는 6·25전쟁에 참전한 군인이었다. 철원 부근에서 한 스님이 중공군이나 북한군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슈미츠에게 관음보살상을 맡겼다고 한다. 슈미츠는 미국으로 보살상을 가져갔고, 죽음을 앞두고 한국으로 돌려주라는 유언을 남겼다. 전쟁은 보살님도 피난 가게 만들었고, 전쟁에 참전한 용사는 잘 보관해 달라는 스님과의 약속을 지켜냈다.
<김동우 국립춘천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제작연 도 : 고려말~조선초
■소 장 처 : 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