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한은 범어 아르핫(Arhat)과 아르한(Arhan)을 한자로 옮긴 아라한(阿羅漢)의 줄임말이다. 나한은 불제자나 고승, 최고의 깨달음을 얻어 불법을 지키고 대중을 구제하는 임무를 받은 성자(聖者)이다. 신통력을 가진 존재로 널리 신앙되어 십육나한, 십팔나한, 오백나한 등으로 늘어났다. 불교가 크게 융성한 고려 시대에는 왕실과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고, 외적의 침입을 막으며, 기우제(祈雨祭)를 행할 때 나한에게 빌었다. 국왕이 직접 참석한 나한재(漢齋)도 자주 열렸다. 조선 시대에는 나한의 신통력을 빌어 죽은 사람의 명복과 극락왕생을 빌거나, 장수나 복 받는 삶을 기원하는 복전(福田)으로 신앙되었다.
강원지역에서는 오대산 상원사와 금강산 유점사 등 크고 작은 사찰이 중창(重創)되었을 때 나한전을 건립하고 나한상들이 만들어졌다. 2001년 영월군 남면에 있는 창령사(蒼嶺寺) 터에서 오백나한상들과 나한전 터가 발굴되었다. 발굴 조사자는 창령사가 조선 전기 영월지역을 대표하는 사찰 중에 하나라고 하였다. 조선 전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생각되는 창령사 나한상 325점이 박물관에 전시되거나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사진은 그중 필자가 좋아하는 나한상이다.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은 나한이다. 입술에는 아직도 붉은 안료를 칠한 것이 남아 있다. 2002년 10월에 국립춘천박물관이 개관하고, 2003년 새해가 되었을 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큰 현수막을 걸었다. 현수막에 소개되는 유물로 모두가 이 나한상을 손꼽았다. 전시돼 있는 이 나한상 앞에 서면 유난히 즐거워진다. 나한이 '행복하세요'라고 인사하는 듯하다. 그리고 머리와 몸이 떨어져 있던 것을 다시 단단히 붙여 제 모습을 갖추게 된 나한상이다. 이제 머리가 다시 떨어지지 않을 나한의 기운을 얻으면 모든 시험에 떨어질 리 없을 것이라고 상상해 보기도 한다. 아무튼 보면 즐거워지고, 무언가 위로 받게 되는 나한이다.
<김동우 국립춘천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제작연 도 : 고려말~조선초(15~16세기 초)
■소 장 처 : 국립춘천박물관 상설3전시실
■크 기 : 높이 24.8㎝, 너비 37.9㎝,
두께 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