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박고자리를 만들려면 우선 호박 농사를 지어야 한다. 거름 더미 곁에 아무렇게나 구덩이를 파고 심어 놓으면 저절로 되는 옛날 호박 농사가 아니다. 비닐하우스에서 여름 내 땀을 진액처럼 쏟아야 되는 게 요즘 호박 농사다. 그렇게 키운 호박을 썰어 바싹 말려야 고자리가 된다. 한 권사님이 지난해 비닐하우스 설치비며 작물을 기르느라 400만원도 더 들었다는데 고자리를 해서 판 돈은 겨우 170만원이었다니 셈으로만 치면 아주 밑진 한 해였다.
그녀가 시골로 들어가기 전에는 시내에서 커피 집을 했다. 커피, 스파게티며 리소토도 곁들여 팔았는데 내겐 세상에 없는 맛이었다. 어떤 레스토랑도 그녀가 만드는 맛은 따라오지 못했다. 어느 날 내가 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스파게티가 맛있는 거죠?” 그러자 늘 웃음을 달고 사는 그녀가 말했다. “뭐 별거 아녜요. 처음에 스파게티를 배울 때 요리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스파게티에 맛이 나지 않으면 소금을 듬뿍 뿌리면 된다'고 했어요. 제 생각에 스파게티는 면이나 소스 맛이 아니라 그냥 소금 맛 같아요. 맛이 있다는 건 소금 맛이 난다는 거겠지요?”
그때 나는 알았다. 세상의 모든 음식 혹은 요리의 맛은 단지 '소금 맛'이란 걸 말이다. 나는 스파게티를 먹고 싶을 땐 권사님이 요리한, 커피 냄새에 담긴 그 스파게티만 먹었다. 그러다가 내가 터득한 게 있는데 스파게티는 '면과 소스의 이중성과 그 배반의 감정'을 확인하는 실험과도 같다는 것이었다. 유럽에 가면 우리 길거리에서 호떡 팔듯이 피자를 팔고 스파게티를 먹는다. 그런데 문제는 음식들이 권사님 말마따나 모두 '소금 맛'이라는 거다. 그걸 맛있는 스파게티, 피자라고 하는데 그냥 '짠맛'을 맛있다고 하는 거다. 이게 곤혹스러워 내가 알아 둔 유일한 이탈리아어가 하나 있다. '뽀꼬쌀레'(소금 좀 덜 쳐 주세요=뽀꼬쌀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