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포수 형제 ⑭
이상화 시인의 우울증도 풀렸다. 그는 계속 그 마을에 머물면서 환갑잔치에 참가하기로 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시인이 내놓은 축의금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그때까지 보지 못한 커다란 종이돈이었다. 그들은 도읍지의 사정을 잘 아는 면 서기에게 물어 보고 그게 일본돈 100엔이라는 것을 알았다. 100원의 10배나 되는 가치가 있다는 말이었다. 김씨 어른의 아들인 면 서기는 이 시인의 집안이 대구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명문집안이라고 말했다. 이 시인도 존경을 받는 유명한 문인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날 밤 이미 통성명을 한 장로 두 사람과 면 서기를 하는 김씨 어른의 아들이 몰래 찾아왔다. 온 마을이 잔치준비에 들떠 있는데 그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뭔가 큰 걱정거리가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모두 상의를 했으나 이 일은 우리 힘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멀리서 오신 나리에게 이런 말씀을 올리게 된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만 나리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합니다.” 회갑을 맞은 김씨 어른에게는 두 아들과 두 딸이 있었다. 장남은 마을에서 집안을 계승했고 차남은 대구에서 공부를 하여 면 서기가 되었고 둘째 딸도 이웃마을의 어느 점잖은 집안에 시집을 가 첫째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맏딸이 문제였다. 그 딸은 예쁘고 똑똑하여 부모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면서 대구에서 공부했다. 가난한 산골마을에서 딸을 도읍지에 보내 고등학교에까지 진학시키는 일은 극히 드물었으나 부모는 간곡한 딸의 청을 이기지 못해 그렇게 해주었다. 그게 잘못이었다. 산골사람은 산골에서 살아야만 했다. 대구에서 신학문 공부를 한 딸이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구의 어느 부잣집 첩이 되었다. 어엿한 본부인이 있는 남자의 유혹에 빠졌다. 소위 연애를 했는데 그건 사도의 연애였으며 결국 그 딸은 남의 집 첩살이를 하게 되었다. 비록 산골마을에 살고 있었으나 김씨 어른은 그래도 양반의 핏줄이었다. 선산 김씨라고 하면 양반골 안동에서도 알아주는 명문이었다.
그래서 김 영감은 그 핏줄기를 더럽히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왔다. 그런 엄격한 가풍을 지키고 있던 김씨 어른의 딸이 첩살이를 한다는 말을 듣고 크게 노했다. 김씨 어른은 10년 전에 그 딸을 제적하고 마을 주변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그년은 물론이고 그년과 만나는 사람도 용서하지 않았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났는데 김씨 어른의 환갑날에 어려운 일이 생겼다. 집안에서 쫓겨난 그 딸이 회갑날 아버지를 만나겠다고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