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신춘문예 당선작]단편소설-회전의자

라면 한 박스를 이고 컨테이너 박스로 가는데 글쎄 나무들이 울면서 통째로 떠내려 오더라.

우우거리면서 쓸려 가는데 별안간 네 생각이 나지 뭐니.

너도 거기서 그렇게 울고 있을 것만 같더라.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꽁꽁 묶어놓은 것처럼 엄마의 목소리는 아득했다.

전화할 때마다 엄마는 나름대로 내가 납득할만한 이유를 만들었다.

내가 사는 곳에 버스사고가 났다는데 혹시 내가 거기에 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해서, 오랜만에 집으로 외삼촌이 놀러 왔는데 한참 동안 내 얘기만 하다가 가셔서, 청소를 하는데 오래전에 내가 잃어버렸다고 속상해하던 머리핀이 나와서.

심지어는 밖에 바람이 부는데 자꾸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만 같아서 전화를 하신 적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 어디서 지내고 있는 거예요?

어디긴, 떠내려간 집 위에 임시로 마련해준 곳에서 지내고 있다.

안이 찜통이라 들어가 있진 못해도 없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니.

집 떠내려가고 이 더운 날씨에도 네 애비는 잘도 들어가 낮잠을 잔단다.

그래도 사람 안 다친 게 다행이지.

누구 다녀간 사람 있어요?

다녀가긴 누가 다녀가니.

자식이라곤 달랑 너 하난데.

여긴 연일 건조할 뿐이었다.

나는 엄마의 눅눅한 목소리를 낯설게 받아들었다.

어느 날은 계란말이를 하는데 맛소금이 없었다.

된장이며 고추장에 간장까지 챙겨주던 엄마는 굳이 가방 안에 굵은 소금까지 챙겨주었다.

여기서 마트까지 나가려면 차를 타고 한참을 가야 했다.

때문에 보통은 주말에 필요한 것을 한꺼번에 사오는 편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굵은 소금을 꺼내 손가락 끝으로 잘게 부수어 계란을 푼 그릇에 넣었다.

그러다가 손끝이 아려서 보니 살짝 피가 돋아 있었다.

그 사이 굵은 소금이 꾸둑꾸둑 말라 있었던 것이다.

연일 건조한 날씨 때문에 굵은 소금에 손까지 베었다.

물기 있는 엄마의 목소리를 병에 담아두고 싶다.

아직은 좀 그래.

아버지도 건강하지? 엄마도.

그래.

너무 걱정 마라.

내가 괜한 소리 했나 보네.

여기 자원봉사자들이 수두룩하니까.

네 애비는 종일 자는 게 일인 사람인데 건강하고 말고 할 게 어디 있겠니.

그래도 언제고 한 번 여기 들러라.

장마 지나간 뒤로 너무 변했어.

한창 공사하는데 너 올 때쯤엔 예전 모습이 하나라도 남아있을지 모르겠다.

집이라도 못 찾으면 어쩌니.

엄마의 목소리엔 금방이라도 곰팡이가 꽃처럼 피어나고 불규칙한 무늬들이 돋아날 것만 같았다.

며칠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촘촘하게 비가 내리고 강물이 불어났다고 했다.

곧 전기가 끊어지고 수도가 끊어지고 비가 그치길 기다리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긴 날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안전한 초등학교 체육관으로 피신했다.

아버지는 그때도 구석에 웅크리고 곤하게 주무셨다.

마을에서 급히 떠나온 사람들은 집에서 귀중한 것들을 챙겨 나왔다고 했다.

사람들이 죄다 그걸 하나씩 들고 나왔더라.

하긴 그게 제일 중요하다면 중요하지.

전화를 끊자 물기가 고일 것 같던 바닥이 금세 말랐다.

나는 엄마에게 여기는 너무 건조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엄마는 이 계절에 건조한 곳이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엄마가 누진 옷들을 말리기 위해 보일러를 틀 때면 나는 가습기를 주기적으로 작동시켰다.

바닥에 물을 쏟아도 걸레를 찾아 빨아서 오면 온데간데없이 물기가 사려졌다.

아무런 무늬도 남기지 않고 증발해버린 것이다.

뭐든 아무런 무늬를 남겨놓지 않고 허공에 붕 뜰 것 같은 나날들.

세탁기 안에 밀어 넣었던 빨래들을 도로 빼냈다.

더 이상 동전은 들어가지 않았다.

투입구 안쪽으로 꾸역꾸역 채워진 동전들이 보였다.

도열해 있는 기계들이 죄다 그랬다.

아무도 동전을 거둬가지 않으니 더 이상 세탁기를 쓸 수 없었다.

빨래방은 며칠 동안 이런 상태로 고여 있었다.

세탁기 안은 세제들이 말라붙어 있었고 섬유 유연제를 판매하는 자판기는 텅 비어 있었다.

바구니 안으로 빨랫감들을 아무렇게나 담았다.

거긴 빨래를 해도 금방 마르겠구나.

여기는 아침에 널은 네 아버지 팬티가 해가 질 때까지도 마르질 않는구나.

마르는가 싶으면 또 비가 내리기 시작해.

젖은 팬티를 입는 것과 더러운 팬티를 입는 것 중에 뭐가 더 나쁜 거라고 생각하니.

세탁기를 들여놓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다.

엄마는 세탁기가 없는 집에 사는 나를 안쓰러워했다.

잔뜩 따라놓았던 물은 전화하는 사이에 한 모금 정도가 줄어들었다.

엄마는 내 옆을 뚜벅뚜벅 걸어 다니는 건조함을 잔뜩 미화하곤 전화를 끊었다.

내가 물기 있는 엄마의 목소리에 대해 부러워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바닥을 밟을 때마다 뿌옇게 솟아오르는 흙먼지들과 퍼석하게 말라버린 짐승의 배설물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눈물은 뺨에 흐르기도 전에 말라버렸다.

엄마는 아무런 감정의 변화가 없는데도 눈물을 흘리는 거 같다고 했다.

닦아보면 그것은 빗물이라고 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우산 하나씩은 끼고 다닌다.

저 사람은 우산이 없어 어쩌나, 하고 시선을 주다 보면 건물에서 나올 땐 가방에서 여지없이 우산을 꺼내 경쾌하게 펼치곤 한다.

그런 계절이다.

우산을 펼치는 소리만 가볍게 튀어 오르는 계절.

처음엔 예전에 살던 방에 들러 물건을 챙겨 엄마에게 내려가 볼 생각이었다.

전기세와 가스요금을 납부해야 했고 주인집에 수도세를 지불해야 했다.

하지만 기차를 타고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터미널에 들러 엄마에게로 갔다.

엄마는 없던 길들이 생겨나고 있던 길들이 하룻밤 사이 사라진다고 했다.

멀쩡한 길이 강이 되어 흐르고 집 한 채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아직 시외버스가 다닐 때 가야했다.

엄마에게 다녀오고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비가 내리고 있다.

아직 복구공사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다시 비가 내려 안타까움을 더해준다는 앵커의 목소리가 공중을 누렇게 떠다닌다.

이렇게 비가 쏟아질지 누가 알았겠니.

엄마는 목줄을 풀어놓지 않아서, 개집에 물이 들어찰 때까지 꼼짝없이 묶여있던 누렁이 시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버지는 모종삽을 들고 산으로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복구공사 중이라 산을 오를 수 없었다.

오랜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던 아버지는 곧 다시 누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창 더울 때 잡아먹는 건데 말이야.

모로 누운 아버지는 부러 큰 소리를 냈었다.

터미널 매점 여자는 깊숙한 곳에서 우산을 꺼내준다.

가방에는 조악한 꽃무늬 양산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어떤 우산을 드리냐는 물음에 내가 했던 대답은 심드렁했다.

그냥 아무 거나요.

여자는 수북이 쌓인 우산들 중에서 맨 아래에 있는 것을 빼준다.

손의 움직임이 제비뽑기를 할 때처럼 사뭇 진지하다.

아래에서 우산을 빼내자 빽빽하게 쌓인 우산들이 흐트러진다.

그러는 사이 빼낸 자리가 메워진다.

우산 하나를 빼낸 자리는 이제 티도 안 난다.

여자는 장마 동안 우산을 다 팔 수 있을까.

아무런 무늬도 없고 두 번밖에 접혀지지 않아 핸드백에 넣을 수도 없는 우산을 쓰고 예전에 살던 방으로 왔다.

사람들은 조금만 조밀해지면 저마다 우산을 번쩍 들었다.

나도 덩달아 우산을 높이 들었지만 사람들 얼굴에 닿기 일쑤였다.

우체통에 고지서 용지가 반도 넘게 삐져나와 있다.

나는 화장실 안에서 줄기차게 노크소리를 듣고 있을 때 화장지를 풀어내듯, 신경질적으로 고지서 용지를 그러쥔다.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발자국 소리가 과장된다.

멀리 누군가가 내가 걷고 있는 만큼만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 듯하다.

나는 걸음을 딱 멈춘다.

현관문 앞에는 젖은 박스가 놓여있다.

밑에는 물이 고여 있다.

물기들이 박스를 타고 올라와 무늬를 만들어놓았다.

이 안에 뭔가 들어갈 수 있을까.

내 허리까지 올라오고 한 아름이 넘는 박스는 눅눅하다.

덕지덕지 붙여놓은 테이프도 쉽게 뜯겨나간다.

주소에는 내 이름이 정확하게 쓰여 있다.

혹시라도 잘못 보내질까 힘을 주어 반듯반듯하게 쓴 글씨체다.

엄마가 보낸 것이었다.

이제 엄마와 아버지의 집에는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완전히 떠나온 것이다.

테이프를 뜯어내고 흐물흐물해진 박스 안을 열어본다.

아직 여독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을 하고 회전의자가 돌고 있다.

나는 맹렬하게 돌고 있는 회전의자를 세운다.

등받이까지 물방울이 송골송골 돋아나있다.

나 무 꼭대기에 훌라후프가 걸려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땐 가지들이 동그랗게 휘어져 있나 했었는데 가까이 와서 보니 훌라후프가 걸려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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