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언

[언중언]단종 그리고 보덕사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일러스트=조남원 기자

영월읍 영흥리의 산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나지막한 산자락에 조용히 자리한 사찰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보덕사(報德寺)’다. 이름처럼 ‘넓은 덕으로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뜻을 지닌 이 사찰은 수행의 공간을 넘어 한 왕의 비극을 기억하는 자리로 남아 있다.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은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강등돼 영월로 유배된다. 당시 보덕사는 ‘노릉사’로 불렸다. ▼단종은 현재 보덕사의 포교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관풍헌’에서 1457년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241년이 흐른 1698년(숙종 24년)에 복위된다. 이때 묘호가 ‘단종’, 능호는 ‘장릉’으로 정해진다. 이어 숙종 31년에 이르러 보덕사는 장릉의 원찰로 지정된다. 대웅전 뒤편에는 영단이 세워졌고, 제향을 이어왔다. 대웅전 옆 산신각에는 단종을 산신으로 모시는 전통도 남아 있다. 왕이 아닌 산의 신으로 남은 존재. 그렇게 이곳은 단종을 끝까지 품은 ‘수호의 공간’으로 이어져 왔다. ▼‘전차복철(前車覆轍)’이라고 했다. 앞 수레의 자국을 뒤 수레가 따른다는 뜻이다. 역사는 반복되면서 또 이어진다. 보덕사가 단종을 산신으로 품은 것도 그 연장선이다. 버려진 왕을 끝내 놓지 않은 선택, 그것은 과거를 지우지 않겠다는 의지다. 사라진 권력보다 남겨진 기억이 더 오래간다는 사실을 이곳은 조용히 증명해 왔다. 단종제가 59회째 이어진 흐름도 그 연속이다. 그러나 지킨다는 것은 그대로 두는 일이 아니다. 알리고, 찾게 하고,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과정이 함께해야 한다. 보덕사의 의미가 산속에만 머문다면, 그 기억 또한 점점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보존은 곧 확장의 또 다른 이름이다. ▼지금 보덕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늘어나는 발걸음 속에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 단순한 관광지로 머물 것인지, 아니면 시간을 품은 공간으로 이어질 것인지. 알리는 일과 지키는 일은 별개가 아니다. 더 많은 이들이 찾을수록, 더 깊이 기억되도록 해야 한다. 보덕사의 고요가 오래 남으려면, 이제는 그 가치를 더 펼쳐야 할 때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라이프

이코노미 플러스

강원일보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