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화단상] 희망의 봄 개나리꽃

우승순 에세이스트

간밤엔 봄꽃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나보다. 창문을 여니 촉촉하고 상큼한 공기가 훅 들어온다. 긴 호흡으로 한껏 들이마시다 봄기운에 이끌려 어느 새 뒷산 산책로를 어정버정하고 있다. 물기 머금은 숲에선 구수한 낙엽 냄새가 나고 부엽토에선 꿈틀꿈틀 생명의 기운이 느껴진다. 버들가지는 연둣빛 물을 한껏 머금었고 양지바른 길가엔 풀싹이 파랗게 녹아 나온다. 햇살도 반짝인다.

게으른 발걸음이 잠시 멈춰졌다. 작은 새들이 바삐 움직이며 재잘 대는 그곳엔 개나리가 올망졸망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아직은 벌 나비도 왕성하지 않은데 무슨 희망으로 꽃을 피웠을까? 혹한을 견디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기에 봄을 맞는 황망함에 잎보다 먼저 꽃을 피웠다. 망춘(望春)이다. 칙칙한 겨울 그림자를 거둬내고 움츠렸던 대지를 환하게 밝힌다. 영춘(迎春)이다. 나목(裸木)들이 행여 봄인가 조바심 내며 망설일 때, 개나리가 신호등을 켜주면 안심하고 새순을 내민다. 간혹, 이상 기온으로 겨울이 겨울답지 못할 땐 동지섣달에도 서슴없이 노란불을 깜박이며 지구 온난화를 경고한다.

개나리는 어울림의 꽃이다. 한 송이씩 홀로 피기보다는 함께 어울려 팝콘처럼 터뜨린다. 긴 가지에 재잘재잘 꽃잎을 매달면 무표정하던 주변 풍경도 밝게 웃는다. 나지막한 토담이나 비탈진 밭둑에선 촘촘한 울타리를 만들어 포근히 감싸고, 먼지 덮인 도로변이나 도심의 축대에선 끈질긴 생명력으로 삭막함을 덮어 준다. 귀하고 화려한 꽃은 묘한 긴장감을 주지만, 애써 가꾸지 않아도 절로 피는 개나리꽃은 인심 좋은 이웃을 닮았다.

우리나라의 개나리 사랑은 유별나다. 상호나 아파트 명칭 등에 널리 쓰이고 전국 지자체에서 개나리를 상징 꽃으로 정한 곳도 40여 곳이 넘는다. 꽃이 특별히 화려하지도 않고, 달콤한 열매를 맺는 것도 아닌데 왜 그토록 개나리를 좋아하는 걸까? 늘 주변에 있어 편안하고, 양지든 음지든 씩씩하게 자생하는 모습이 희망을 품고 역경을 견디는 우리 자신을 닮았기 때문은 아닐까?

내 살고 있는 춘천의 상징 꽃도 개나리다. 개나리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 봄 냇가인 춘천(春川)일 것이다. 지금은 도시가 팽창하면서 개나리 동산엔 대부분 아파트나 건물이 들어섰지만 예전엔 춘천을 ‘개나리 피는 마을’이라 불렀다 한다. 그 시절엔 삼천리 방방곡곡이 개나리 피는 마을이었고 봄이면 마중 나가 어깨동무하며 뛰놀던 소꿉친구 같은 꽃이었다.

연륜이 더해갈수록 꽃의 의미도 해마다 새롭다. 이른 봄 생강나무로 시작해서 개나리가 길을 열고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고지면 아카시꽃이 꿀 향을 흩날리며 봄의 절정을 이룬다. 꽃이 주는 이미지도 저마다 다르다. 노란 개나리꽃은 겨울잠을 깨우는 ‘희망의 봄’이다. 그러나 잎이 무성해지면 꽃은 잊힌다. 심지어 그 나무가 개나리인지조차 알아보지 못한다. 꽃으로 사는 시간보다 잎으로 사는 삶이 길지만 아랑곳없이 이듬해 봄이면 새 희망을 꽃피운다. 그렇다! 인생도 해마다 ‘나만의 꽃’을 피울 수 있다면 얼마나 향기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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