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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보]강남 구룡마을 화재 약 8시간만에 완진…165가구 258명 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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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길목에 집들이 붙어있는 탓에 소방차 진입 제한돼 진화 작업에 어려움
서울시, 구룡중학교에 임시대피소 마련하고 추가 숙소 확보해 이재민 지원

◇16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서 소방관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2026.1.16 2026.1.16 사진=연합뉴스
◇16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서 소방관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2026.1.16 2026.1.16 사진=연합뉴스

속보=16일 오전 5시께 '서울 강남의 마지막 판자촌' 개포동 구룡마을 4지구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약 8시간 만에 완전히 진화했다.

소방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5시께 구룡마을 4지구에서 원인 미상의 화재가 발생해 인접한 6지구로 불길이 번졌다. 임시 가건물이 밀집한 지역 특성상 화재가 빠르게 확산했다.

5지구와 7지구는 연소 확대를 차단해 직접적인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빈집에서 불이 났다"는 최초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 당국은 오전 5시 10분 소방대응 1단계를 발령했고, 화재 규모가 커지자 오전 8시 49분 대응 2단계로 상향해 가용 소방력을 총동원했다.

오전 11시 34분께는 화재를 초진해 대응 단계를 하향 조정했으며, 오후 1시 28분에 완진했다. 현재는 잔불 정리와 피해 수습이 진행 중이다.

이 화재로 구룡마을 4지구 35가구 59명, 5지구 39가구 68명, 6지구 91가구 131명 등 총 165가구 258명이 대피했다. 현재까지 인명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소방당국은 인원 324명과 장비 106대를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안개와 미세먼지로 소방헬기 투입이 지연됐으나, 기상 여건이 호전된 오후 12시 29분부터 헬기가 이륙해 공중에서 잔불 정리를 이어갔다.

서울 강남소방서는 긴급구조통제단을 가동하고 드론과 굴삭기 등을 투입해 연소 확대 차단에 주력했으며, 현장 인근에 임시의료소를 설치해 다수 사상자 발생 가능성에 대비했다.

”서울시는 구룡중학교에 임시대피소를 마련하고 추가 숙소를 확보해 이재민 지원에 나섰다.

소방청은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해 경기·인천 지역의 대용량 물탱크차와 중앙119구조본부 수도권119특수구조대의 고성능펌프차를 현장에 투입했다.

소방당국은 잔불 정리가 마무리되는 대로 정확한 화재 원인과 재산 피해 규모를 조사할 계획이다.

지난해 보상과 소유권 이전 절차를 마무리하고 자연 친화 주거단지로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구룡마을은 비닐과 합판, '떡솜'으로 불리는 단열재 등 불에 잘 타는 자재로 지어진 판잣집이 밀집해 불길이 빠르게 번진 것으로 소방 당국은 보고 있다.

좁은 길목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탓에 소방차 진입도 제한돼 진화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16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4지구 화재현장에 불길과 연기가 치솟고 있다. 2026.1.16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6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4지구 화재현장에 불길과 연기가 치솟고 있다. 2026.1.16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편 화마가 덮칠 당시 구룡마을에는 망연자실한 주민들의 절규가 이어졌다. 이들은 가스통이 터지는 폭발음이 들릴 때마다 "어떡하면 좋냐"며 발을 동동 굴렀다. 소방관들이 불을 끄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주민들은 경찰과 소방관이 보일 때마다 "소방차가 왜 보이지 않느냐. 빨리 불 좀 꺼달라"고 호소했다.

사이렌과 함께 대피 방송이 계속 울렸으나 주민들은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한 주민은 경찰의 대피 지시에도 문을 잠그고 "내 집인데 도대체 어디로 떠나라는 거냐"며 버티다가 10여분 만에 나왔다.

34년 동안 구룡마을에 살았다는 이재민 A씨는 "기가 막히고 황당해서 눈물도 안 나온다"며 마을 길목에 주저앉아 멍하니 불타는 집만 바라봤다. 경찰이 팔을 붙잡고 함께 대피하려 했으나 요지부동이었다.

A씨는 "집 안에 있는 약도 못 갖고 나왔다"며 "지금까지 어떤 조치도 안 하고 정부가 방치한 게 문제지,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냐"고 울먹였다.

인근 주민 신모(71)씨도 "강아지 네 마리도 못 데려 나오고 몸만 빠져나왔다"고 했다. 그는 "시집 와서부터 여기 살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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