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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화천형 빙설경제

산천어는 화천의 겨울을 견인하는 은빛 신화다. 꽁꽁 언 얼음 위에 뚫린 작은 구멍들, 그 틈으로 미끄러져 나오는 냉수성 민물고기는 단순한 어획물이 아니라 지역이 품은 간절한 염원이다. 한겨울, 인구 2만3,000명 남짓의 산간 오지에 180만의 세계인이 몰리는 풍경은 어쩌면 기적보다는 ‘집념’에 가깝다. 춥고 어둡고 긴 겨울, 사람이 사는 법을 터득한 곳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이렇듯 화천에선 얼음 위의 환호성과 얼음 밑 생명의 몸짓이 교차한다. ▼산천어축제를 말할 때 종종 CNN의 ‘겨울 7대 불가사의’라는 수식이 소환된다. 불가사의는 저절로 빚어지지 않는다. 겨울비에 얼음이 녹자 공무원들은 빗자루를 들고 뛰쳐나갔다. 물을 퍼내고, 눈을 쓸고, 얼음을 채웠다. 단 한 명도 예외 없는 출동. 이 풍경은 군신유의도, 충효도 아닌 ‘살림의 철학’이다. 조선 말 다산이 읊은 ‘목위민유야(牧爲民有也)’가 축제장에서 되살아난다. 공직이란 권한이 아니라 존재 이유라는 자각, 그들이 얼음판을 누빈다. ▼화천은 근대사의 경계에 서 있던 땅이다. 광복 후엔 38선 이북으로 편입돼 소련군 주둔지였고, 6·25전쟁의 상흔 속에 재편됐다. 청우당 사건, 화랑공작대의 이름은 이 지역의 무게를 증명한다. 이 땅의 겨울은 늘 가볍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관광은 화천의 생계이며, 얼음은 미래의 기반이다. ‘생천(生川)’이라 불리던 시절처럼, 지금도 화천은 살아 있는 강을 품고 있다. 생명과 생계, 이 두 흐름이 겨울철에 산천어의 몸짓으로 다시 만난다. ▼산천어축제가 지난 10일 개막됐다. 산천어는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습성이 있다. 그 본능처럼, 화천도 정해진 운명을 거슬러 자립의 길을 좇아왔다. 공무원의 땀이 쌓여야 얼음이 단단해지고, 마을의 체온이 더해져야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산천어는 물고기가 아니라 정주의 다른 이름이며, 얼음은 단절이 아니라 연결의 풍경이다. 이곳에서 축제는 단순한 흥행이 아닌 ‘빙설경제’다. 정체된 땅에서 생동을 끌어낸 저력, 그것이 진짜 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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