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간 간첩이라는 억울한 누명과 사회적 편견 속에 눈물 흘린 납북귀환어부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허영(춘천갑) 국회의원은 2일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납북귀환어부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허 의원은 내년까지 법안 통과를 목표로 삼고 있다.
허 의원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납북귀환어부 피해자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납북귀환어부특별법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기자회견에는 속초와 전남 여수, 경기 평택 등에 거주하고 있는 납북귀환어부 및 가족 16명, 진상규명∙명예회복 활동을 해온 강원민주재단 최윤 이사장, 김남덕 이사, 엄경선 납북귀환어부 피해자 시민모임 운영위원, 김창근씨 등이 함께했다 .
허 의원이 발의한 특별법에는 국무총리 소속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명예회복 위원회’를 설치해 국가 차원의 공식 조사와 심사 체계를 마련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개별 피해자들이 스스로 재심을 청구하기 매우 어려운 점을 고려해 위원회가 법무부 장관에게 직권재심을 권고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를 법률로 명문화했다. 납북·구금 기간과 피해 정도를 고려한 보상금 지급, 고문 후유증과 트라우마 치료를 위한 의료지원, 생계 곤란 피해자에 대한 생활지원금 지급 근거도 함께 마련해 실질적인 회복을 도모하도록 했다.
납북귀환어부 사건은 1953년 정전협정 이후 3,600여명(진실화해위는 7,000여명까지 추산)의 어부들이 북한 경비정에 의한 납치 또는 기상 악화로 인한 월경으로 북한에 억류됐다가 귀환한 뒤, 오히려 국가로부터 불법 월북자·간첩으로 몰려 극심한 인권침해를 겪은 사건을 칭한다.
피해 어부들은 영장 없는 구금과 고문, 강압 수사 속에서 허위자백을 강요받았고 출소 이후에도 정보기관의 지속적인 감시와 사찰로 고통을 받았다. 그 가족들 역시 ‘간첩의 가족’이라는 낙인으로 취업·진학 제한 등 연좌제에 가까운 차별을 겪으며 고통이 대물림됐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해당 사건을 직권조사하고 국가의 사과와 재심 권고를 내린 바 있지만, 권고만으로는 피해자들의 실질적 명예회복과 보상이 어렵다는 점에서 종합적인 특별법 제정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특히 피해자 대부분이 고령이라는 점에서 피해 회복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선 납북귀환어부 김영수(71·동해)씨는 “동해, 남해, 서해 바다가 왜 검붉게 변했는지 아시나”라며 “납북어부의 원통함으로 50년 넘도록 피맺힌 고통과 흘린 눈물이 있기 때문”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16세에 오징어를 잡으러갔다가 납북된 이후 1년간 억류하고 속초로 귀환했다. 고생했다고 반겨줄 줄 알았는데 어린 저에게 전기고문, 물고문, 그것도 모자라 몽둥이로 두들겨 팼고 수사관의 바짓가랑이에도 매달렸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울면서 제발 때리지 말아달라고 했지만 빨갱이 새끼는 죽어야 한다면서 고춧가루 고문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실형 선고를 받고 속초로 돌아왔을 때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형제들은 도망가 지금까지도 네 형제 행방을 알 수 없다. 사찰 대상자가 돼 주거지 제한을 받았고 일거리도 없었다. 사회는 저를 전과자로 외면하고 경찰은 수시로 사찰하고 감시했다”며 “죽으려고 시도도 했는데 그동안 빼앗긴 내 인생, 청춘, 젊음이 너무도 억울해 차마 죽지를 못했다”고 했다. 또 “우리가 북한에 가고 싶어서 갔나. 국가가 우리를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뭐 때문에 빨갱이로 만들었나”라며 “납북어부들은 거창한 것을 무리하게 원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 이 억울함을 하루 속히 풀어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김 씨는 트라우마로 낯선 사람만 봐도 숨는다며 “국가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있나. 납북귀환어부들의 빼앗긴 인생, 이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덧붙였다.
허영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울먹이며 피해자들을 향해 “국민을 대표하는 헌법기관의 일원으로서 진심 어린 사죄의 인사를 드린다”며 고개 숙이기도 했다.
허 의원은 “납북귀환어부 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국가폭력 사건 가운데 하나”라며 “국가의 잘못으로 인한 인권침해를 바로잡고 피해자와 가족의 존엄을 회복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또 “이 특별법은 정치적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저질렀던 인권침해를 바로잡는 헌법적 책무를 이행하는 일”이라며 “피해자와 유가족의 눈물이 더 이상 방치되지 않도록 국회가 응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피해자들이 이미 고령으로 세상을 떠나고 있다. 살아 계신 동안 억울함을 풀어드리는 것이 국가의 최소한의 도리”라며 법안 처리의 시급성을 재차 강조했다. 허 의원은 특별법 제정까지 피해자, 유족과 함께하겠다고 밝히며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공포되는 그날이 바로 국가폭력의 어두운 과거를 마주하고, 정의와 존엄의 가치 위에서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특별법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인 최윤 강원민주재단 이사장도 “6년 전 납북귀환어부 문제를 알게 된 뒤 국가폭력의 실상을 외면해온 책임감과 부끄러움으로 해결에 나섰다. 고령의 피해자들이 더 늦기 전에 특별법으로 명예회복과 보상을 받도록 국회가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법은 허영 의원을 비롯해 맹성규·박수현·이훈기·최혁진·김준혁·서영교·최민희·박정현·박지혜·김태선·박용갑·박균택·한민수·소병훈·김영환·박상혁·서미화·김상욱·박지원·허성무·김윤·이해식·정진욱·이주희·박해철·전용기·박선원·윤종군·이강일·김원이·박정 의원 등 32명이 공동 발의했다.
한편, 강원일보는 지난 2021년 특집 기획보도를 통해 동해안납북귀환어부의 진실을 수면 위로 올리고 진실화해위의 직권조사를 이끌어냈다. 전국적인 반향과 관심을 불러일으킨 공을 인정받아 2022년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