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출신 소설가 이순원이 언어를 잃고 이름을 바꿔야 했던 일제강점기, 조선어 말살 시기의 민낯을 두 소녀의 우정을 통해 서정적으로 그려낸 ‘두 소녀: 요코와 나의 이야기’를 상재했다. 소설의 무대는 강릉 납돌마을. 조선어가 사라지고 이름이 지워지던 1937년부터 1945년까지의 일제강점기 말을 배경으로 한다. ‘용자(요코)’와 ‘후득’은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친구가 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우정은 ‘고무신 한 켤레’로 갈라지고 만다. 한 아이는 저항했고, 다른 아이는 대신 순응해야 했다. 말과 이름, 옷과 교실까지 식민지 권력이 침투해 있었던 그 시대의 정치는, 결국 아이들의 우정과 생존을 선택의 문제로 만들고 만다.
이순원은 이 비극을 감상에 빠지지 않고 끝까지 응시한다. 무엇보다 ‘두 소녀’는 작가 개인의 창작을 넘어, 가족 구술에서 시작된 문학적 재현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실험이기도 하다. 작품 속 ‘후득’은 실존 인물이며 작가의 어머니 김남숙 여사다. ‘용자’는 실제로 존재했던 어머니의 친구다. 이 기억은 어떤 작위적 구성보다 더 무거운 서사를 요구한다. 이순원은 이를 단순히 회상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시간과 거리, 정념과 기록 사이의 균형을 유지한 채 문학의 형식 안으로 옮겨 놓는다. 무엇보다 주목할 지점은, 이 소설이 선택한 ‘침묵’의 방식이다. 이순원은 외면된 역사, 잊힌 개인들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다가선다. 단 한 번의 울림으로 끝나는 고발이 아니라, 반복해 돌아보게 만드는 침묵의 반복. 그 안에서 독자는 소설이 제안하는 ‘기억의 윤리’와 조우한다.
소설은 언어와 이름이 사라질 때,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지워지는가’를 근본적으로 묻고있다. 이 소설을 ‘평화의 소녀상’에 비유하는 것은 결코 과장된 평가가 아니다. 단지 위안부나 근로정신대 같은 소재를 다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아픈 역사를 어떻게 문학 속에서 생생하게 되살리고, 또 그것이 우리 기억 속에 어떻게 자리 잡도록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마지막에 나오는 “네 옆에 놓아둔 의자에 앉아 네 손을 꼭 잡을게”라는 말은 단순하게 위로를 하거나 추억을 소환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를 기억하고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살아남은 이들의 책임에 가깝다고 하겠다. 실천문학상 刊, 356쪽, 1만6,5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