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흥민이 토트넘 홋스퍼 유니폼을 마지막으로 입던 날, 경기장에서는 뜻밖의 장면이 연출됐다. 교체와 함께 경기장 밖으로 향하던 손흥민에게 상대팀 선수들이 먼저 다가와 악수를 건넸다. 어떤 이는 포옹을 했고, 어떤 이는 가볍게 등을 두드렸다. 기록에는 남지 않을 이 예우가 그 어떤 골보다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단지 클럽의 레전드가 아니라, 상대에게조차 존경을 받은 선수였다는 사실은 축구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새삼 일깨웠다. ▼‘적이지만 존경한다’는 말은 진정한 승부의 현장에서만 나올 수 있다. 진짜 경쟁은 실력을 겨루되, 사람됨은 해치지 않는 데서 빛난다. 손흥민을 마주한 상대팀의 태도 역시 단순한 세리머니가 아니었다. 치열한 승부의 현장에서도 그는 존중받을 자격이 있는 인물이었다. 수많은 수비수들의 타깃이었던 선수가 마지막 순간엔 그들의 존경 속에 퇴장했다. 그날 경기장은 슬픔보다 감동이 넘치는 환송식장이었다. ▼축구는 늘 승자와 패자를 구분 짓지만 손흥민의 은퇴식에는 그런 경계선이 무의미해졌다. 유니폼의 색깔은 달랐지만 그라운드 위의 모든 선수들이 한마음이었다. 감정이 곧 전술이 되는 격한 경기 속에서도, 이날만큼은 모든 전술이 멈춰 섰다. 피치 위에 존재하던 ‘적’은 사라지고 ‘동료’만 남았다. 2017년 AS 로마의 ‘황제’ 프란체스코 토티가 은퇴할 당시 상대팀 제노아 선수들이 경기를 멈추고 기립박수를 보냈던 장면처럼 이날 손흥민 역시 모든 이의 존경 속에서 떠났다. 기록은 시간이 흐르면 흐릿해지지만 태도는 오래도록 남는다. ▼존경은 가장 오래 기억되는 승리다. 트로피는 먼지에 덮여가지만 품격은 역사에 새겨진다. 손흥민이 쌓아 올린 것은 단순한 골 수가 아니었다. 박수 받는 사람보다 박수 치는 사람의 진심이 더 인상 깊었던 날,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어떤 이별은 눈물보다 침묵으로 빛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침묵 끝에 남은 존경이야말로 한 시대를 품위 있게 마무리하는 마지막 인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