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정일의 시 ‘강정 간다’로 999번째 월요시편지를 마무리 한 날, 박제영(달아실출판사 편집장) 시인은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
“오늘 아침,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어쩌다 1,000번 가까이 썼을까 하고요.” 그의 목소리에는 웃음이 섞였지만, 그 웃음 위에는 한 자 한 자를 다듬어온 세월이 덧칠되어 있었다.
‘월요시편지’, 그는 매주 월요일, 한 편의 시와 짧은 감상문을 이메일로 보낸다. 처음은 2000년 봄, 자신이 운영하던 온라인 대행사 직원들에게 보냈던 ‘응원의 메일’이 그 시작이었다. “일주일을 시작하는 월요일, 격려의 말과 함께 시를 실어봤어요. 그런데 그게 좋았는지, 이메일이 여기저기로 퍼졌죠.”
2006년 3월 13일, 이운진 시인의 ‘3월, 폭설’을 첫 편지로 공식 연재가 시작됐다. 시를 읽는 일이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어렵지 않다’고 손을 내밀고 싶었고, 그래서 그는 편지를 썼다. “시는 누구나 자기 감정에 접붙여 읽을 수 있어요. 감상평을 곁들이는 것도 그 때문이죠. 함께 읽는 기분이 들도록.”
그의 말엔 단순한 해설을 넘어선 ‘동행’의 감각이 담겨 있었다.

시의 소재는 일상이다. “한 달이면 시집, 문예지 열 권쯤 와요. 그걸 다 읽고 나서도 바로 선정하진 않아요. 일주일 동안 살다 보면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이 오거든요. 그 감정에 닿는 시를 고릅니다.” 사람을 만나고, 사건을 겪고, 문득 떠오른 감정을 되새기며 그는 주말에 시를 고른다. “때로는 어떤 문장이 가슴에 박혀 잊히질 않아요. 그런 문장 하나 때문에 또 일주일을 살아보게 되는 거죠.”
매체는 여전히 이메일이다. “문학 잡지를 보낼 수도 있고,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도 있죠. 하지만 이메일은 사적인 느낌이 있어요. 편지를 주고받는 감각. 그게 좋아요.” 그는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 2,000 여명에게 이메일을 보낸다. 정갈한 서체, 고른 여백, 정돈된 문장. 시는 그렇게 한 사람의 사유를 담아 누군가의 아침으로 배달된다.
‘월요일’이라는 요일에도 특별한 뜻이 담겨 있다. “처음엔 그냥 회사 직원들에게 월요일 아침 보내던 메일이었죠. 그런데 계속하다 보니, 이제는 월요일엔 시를 읽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커피 한잔하면서요.” 그의 말에선 소소한 의례처럼 시를 읽는 이들이 보였다.

편지의 독자도 변했다. 처음엔 직장 동료와 지인이었고, 지금은 전국 각지의 시 애호가다. 어떤 이는 거의 20년을 받아봤고, 또 다른 이는 어느 월요일 우연히 열어본 편지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는 이 모든 시간이 ‘자신을 위한 시간’이었다고 고백한다.
“사실 가장 큰 수혜자는 저예요. 덕분에 매주 시를 읽고, 감정을 되돌아보고, 누군가와 그걸 나누니까요.”
인터뷰 말미, 그는 1,000 번째 편지에 어떤 시를 보낼 거냐는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정하질 못했어요. 1,000 번째라니, 너무 무거운 숫자잖아요. 그냥 아무렇지 않게, 늘 하던 대로 하고 싶어요. 그게 오히려 1,000이라는 숫자에 어울리는 방식 아닐까요?”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다시 웃었다.
“다음 주 월요일도, 그냥 또 하나의 월요일일 뿐이에요. 시 한 편으로 사람들의 월요일이 조금 더 따뜻해진다면, 저는 그걸로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