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확대경]의병의 날, 그 정신을 생각해 본다

김주원 연세대미래캠퍼스 객원교수

우리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한일간 역사인식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의병의 날, 다시 그 관계를 되돌아보며 바른 방향을 되짚어 봐야 한다. 과거에 대한 바른 인식을 통해 현재에 사는 우리가 미래에 더 잘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앞으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카 교수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의병의 날은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1592년 홍의장군 곽재우가 최초의 의병을 일으킨 날을 기념해 2011년 시작되었다. 기초자치단체 의령군이 이곳 출신 곽의병장을 기리기 위해 국회에 청원하여 기념의 날이 되었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발적으로 일어난 의병의 역사적 의의를 되새기고 이 정신을 원동력으로 우리 역사관을 바로잡자는 취지다.

곽재우 의병장은 뛰어난 전술과 통솔력으로 임진왜란 위기 속에서 수많은 전과를 올렸다. 그 공로로 조정에서 여러 차례 벼슬까지 내렸으나 거듭 고사했고 왜란이 극복된 후에 계속 은거했다. 자본주의시대 결핍을 모르고 사는 탐욕스러운 세상,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임진왜란은 최소 조선군 7만명과 백성 15만명 이상이 죽었고 5만명 이상이 포로로 끌려가 헐값에 팔렸다. 농토 3분의 1이 유실되어 국토가 초토화되었다. 유감스럽게도 임진왜란의 발발과정과 정부의 대응방식은 식민통치를 당하게 되기 전 고종시대나 1950년 6·25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권력자들이 너무 안이하게 대응했다. 왜 참혹한 역사가 반복되었을까? 의병정신을 권력자들이나 우리가 제대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의병정신은 부조리한 우리 사회의 개혁, 적패청산과 관련된다. 국가의 안보를 튼튼히 하면서 적패청산과 역사바로세우기에 나서는 일과 우리에게 현재에도 필요한 시대정신이다. 을미의병은 을사의병, 정비의병으로 이어졌다. 그 정신은 그 뒤 독립운동, 625 민족상잔의 비극속에서도 아니 오늘날 우리 사회가 혼란과 위기 속에 있던 IMF때 금 모으기 운동, 수재의연금 내는 일, 산불피해 등 위기 속 자원봉사 등 다양한 우리의 활동에도 계승발전되고 있다.

의병의 날 이 문제를 다시 제기하는 것은 아직도 한일관계는 정상적으로 복원되지 않고 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은 130년이 지난 현재도 일본은 파렴치하게 공식적인 반성조차 없다. 비공식적으로 당시 현장에 침입한 군대 군인들의 자손들중 2~3명이 사죄하러 다녀간 정도다. 그뿐만 아니라 위안부 문제, 독도문제 등 상호 쟁점이 될만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아직도 정상적으로 납득할만한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을미의병은 일본이 식민지배의 탐욕을 위해 국모였던 명성황후를 시해한 참혹한 우리의 흑역사다. 당시 핵심권력이었던 왕실중심, 왕권의 무능함 속에 치욕스러운 국가적 사건들이 반복되면서 국가는 위기에 처해 있었다. 19세기 외세의 침탈에 항거했던 동학혁명이 실패하면서 풀뿌리 민주주의는 아직도 미완성이다. 현재 대통령선거를 앞둔 지금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 국사학계에서는 을미 의병활동은 주로 재야 유생인 유인석과 이춘영이 주도한 것으로 “밑으로부터의 봉기”로 해석했다. 그렇지만 2004년 김성근 평택 독립운동사 편찬위원회 연구원이 <1895년 원주창의소 통문>를 발견하면서 관점의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다. 즉 독립운동사 연구자들은 을미의병은 당시 고종 등 왕실 측근들의 지원하에 이루어졌다는 주장이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원주를 중심으로 보면 을미의병보다 정미의병에 일부 의병장 중심으로 집중 조명된 부분도 있다. 좀 더 균형감을 갖춘 연구를 통해 기념사업들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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