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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물과 국방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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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남원

1993년 2월 필자는 훈련병 교육을 마치고 전방 예비 사단 모 부대에 배치됐다. 당시 배정받은 중대는 산골짜기로 파견을 가 있어 군 트럭을 타고 몇 시간을 갔던 기억이 있다. 부대에 도착한 것은 저녁 무렵이었는데 당시 만났던 고참들의 첫인상은 “이 사람들은 씻지를 않나?”였었다. 이 같은 의문은 곧바로 풀렸다. 부대가 산골짜기에 위치한 탓에 수도는 없고 부대원들은 겨울 끝자락에 얼지 않은 계곡물을 받아 세면만 하는 상태였다. 이후 마을 인근에 위치한 본대로 옮기며 상수도를 이용할 수 있었지만 이때 처음 살면서 물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았다. ▼30년도 넘은 과거 경험의 ‘썰’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본보 4월22일자 1면에 보도된 ‘화천지역 군장병 67% 계곡물을 식수로 사용 충격’ 기사를 보면서 필자는 화가 났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일부 개선이 됐더라도 전방은 여전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군 장비 현대화, 군장병을 위한 생활 개선 등이 이뤄졌음에도 가장 필수적인 ‘물’은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22년 8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당시 송갑석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육군 전방부대 식수지 현황에 따르면 전방 11개 사단 중 1개 사단을 제외한 모든 사단이 계곡물과 우물물을 식수로 사용했다. 특히 경기도 주둔 5개 사단의 상수도 이용률이 83%인 반면 강원도 내는 42%에 그쳐 도내 복무 장병들이 더 열악한 조건에 위치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지적 이후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사정이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계곡 또는 우물물을 사용할 경우 여름 가뭄과 겨울 한파 등으로 물 사용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 또 장마철이면 전염병 발생 위험도 있다. 장병들이 병을 앓아 군 전력 손실이 우려되기에 하는 걱정이 아니다. 우리의 아들, 그리고 조카들의 건강이 염려돼 하는 얘기다. 1인당 국민소득 3만6,000달러를 넘는 국가의 정부라면 전방 사단 군장병에게 식수로 상수도를 제공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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