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월군민들은 단종과의 소통 뿐 만 아니라 단종의 비(妃)인 정순왕후와도 단종문화제를 통해 소통하고 있다.
정순왕후는 1457년 6월 22일 단종이 영월로 유배를 떠날 때 창덕궁 돈화문을 나와 청계천 영도교에서 단종과 헤어져야 했다. 영도교는 흥인문(동대문)에서 왕십리, 뚝섬, 광나루 쪽으로 가던 다리였다. 단종과 정순왕후가 눈물의 이별을 했다고 해서 ‘영 이별다리’ ‘영이별교’ ‘영영 건넌다리’ 로 불렸다.
정순왕후의 비애는 영월로 유배 떠나는 왕을 따르지 못한 순간부터 시작됐고 너무 어린 신부는 왕의 초라한 살림도, 죽음도 섬기지 못하고 서울 비탈진 마을에 숨죽인 채 여든두 해를 살게 된다. 그녀는 지금 남양주 사릉에 묻혔있다.


정순왕후는 왕비에서 부인으로 강봉 된 후 그가 살았던 장소인 왕실여인들의 출가 귀의처인 정업원, 매일 봉우리에 올라 단종의 명복을 빌던 곳 동방봉, 단종과 정순왕후가 영영 이별했던 영도교, 비단을 빨면 자주색물감이 들었다는 샘 자주동샘, 정순왕후를 향한 여인들의 마음, 여인시장 등이 지금도 이야기로 전해오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단종애사), 드라마(파천무,한명회,왕과비,인수대비), 소설(영영이별 열 이별) 등으로 재현되기도 하였고, 특히 세조의 곡물을 거부하는 등 검소한 생활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영월군은 지고지순한 정순왕후의 사랑과 여인시장을 통한 애민사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 위해 정순왕후 선발대회를 시작, 올해로 25회째를 맞고 있다. 정순왕후와 함께 강봉되기 전 정순왕후를 모셨던 ‘김빈’과 ‘권빈’도 함께 선발하고 있다. 정순왕후와 김빈, 권빈은 1년간 영월군 홍보대사로 활동하게 된다.
특히, 지난해 영월 청령포 주차장 인근에 단종과 정순왕후가 해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천상재회’라는 제목으로 동상을 건립, 청령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