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관들은 개별 사건을 심리하면서 언제나 적정한 양형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고심하게 된다. 피고인의 책임 정도, 피해 회복 여부, 범행의 경위 등을 살피고, 유사한 범죄에서 어떤 판결이 이루어졌는지, 그와 비교하여 지나치게 가볍거나 무거운 처벌이 아닌지를 면밀히 검토한다. 양형기준은 이러한 비교와 판단에 있어 하나의 기준점이 되고, 재판의 일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난 3월 24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사기, 성범죄,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동물보호법 위반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새롭게 확정했다. 이번 개정은 2025년 7월1일 이후 공소가 제기되는 사건부터 적용된다.
사기범죄 양형기준은 2011년에 설정·시행된 이후 그 권고 형량범위가 수정된 적이 없는데,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른 범죄양상이나 국민인식의 변화를 반영하여 이번에 수정되었다. 이에 의하면 이득액이 300억 원을 초과하는 조직적 사기에 대해서는 무기징역까지 권고할 수 있고, 불특정 또는 다수의 피해자를 대상으로 하거나 피해자에게 심각한 피해를 야기한 경우 양형가중요소로서 고려된다. 이는 최근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전세사기, 보이스피싱 등의 사안이 단순한 개인의 일탈을 넘는 구조적 범죄라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대포통장’을 거래하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죄에 관해서도 보이스피싱 범죄와의 연계성이 크다는 사회적 해악을 고려하여 양형기준이 조정되었다. 범죄이용목적이 있거나 영업적·조직적 범행의 경우 보이스피싱 등 후속범행으로 이어져 불특정 다수에 대한 피해가 발생할 개연성이 커진다는 점을 고려하여 양형가중요소 수개를 충족하는 경우에는 권고 형량범위를 법정 최고형인 징역 5년까지로 강화되었다. 2020년 5월 신설된 구성요건인 ‘계좌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받거나 제공하는 행위 또는 보관·전달·유통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기준이 마련되었다.
또 동물보호법 위반 범죄에 대하여 양형기준이 새로이 설정되었다. 동물복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생명존중의 윤리적 기준이 사법적 판단기준에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동물을 죽이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기본범위가 징역형의 경우 징역 4개월에서 1년, 벌금형의 경우 300만 원에서 1,200만 원으로 설정되었고,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에 대해서는 징역 2개월에서 10개월, 벌금 1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설정되었다. 불특정 또는 다수의 피해동물을 대상으로 하거나 반복적 범행, 잔혹한 수법, 상습범 등의 경우 양형가중요소로 보아 기본범위보다 더욱 무거운 처벌을 권고한다.
성범죄 양형기준에서는 기존에 설정되어 있지 않았던 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1조), 피보호·피감독자 추행(같은 법 제10조 제1항)에 대하여 양형기준이 설정되었다. 일반감경요소에 포함되어 있던 '공탁'이 마치 공탁만 하면 당연히 감경이 되는 것처럼 오인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을 반영해 ‘상당한 피해회복(공탁 포함)’에서 ‘(공탁 포함)’이라는 문구가 삭제됐다.
형량을 높이는 것만이 범죄를 억제할 수 있는 효율적인 수단인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엄한 형벌은 법 감정상 위안을 줄 수는 있으나, 형사정책적으로는 개별 사안의 특성과 재범 방지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적정한 양형을 통해 형벌의 응보적 기능과 예방적 기능이 조화롭게 구현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양형기준 조정이 책임에 상응하는 적정한 형벌의 밑거름이 되고 나아가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형벌제도에 대한 보완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