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청봉]정선 '민생지원금' 포퓰리즘 아닌 지속가능 경제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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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주재 부국장

지난 3월, 폐광지역 정선의 골목상권이 오랜만에 생기를 되찾았다. 그 배경엔 정선군이 강원특별자치도 최초로 시행한 '민생회복지원금'이 있다. 얼어붙은 민심을 녹이고 지역경제에 온기를 불어넣기 위한 실험이 조용히, 그러나 강한 울림을 남기며 시작된 것이다.

정책은 단순했다. 모든 군민에게 1인당 30만원씩 지급. 얼핏 보면 익숙한 현금성 지원에 불과해 보인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예산’과 ‘철학’, ‘설계’의 세 축이 맞물린 정교한 구조가 있다.

먼저, 재원은 정선군이 보유한 강원랜드 주식의 배당금으로 마련됐다. 국비 의존도, 지방채 발행도 없이 ‘이미 확보된 수익’을 활용했다. 재정 건전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지역 자원을 활용한 자립적 방식이다. 지역이 가진 자산을 지역 주민에게 되돌려주는, 선순환의 시작이었다.

둘째, 지역경제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해 사용처를 철저히 제한했다. 지역 내에서만 사용 가능한 지역화폐로 지급했고, 매출 30억원 이상 대형 매장에선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읍내 음식점과 전통시장, 영세 자영업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한 장치다. 실제로 정선읍 한 식당 주인은 “1~2월보다 3월 말 매출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현장의 반응은 곧 데이터로 확인됐다. 정책 시행 20여일 만에 56억원이 지역 내에서 소비됐고, 이는 농협 카드 전산 자료를 통해 공식 확인됐다.

셋째, 사용기한을 6월 30일로 제한하며 빠른 소비를 유도했다. 돈을 쥐고 있어도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한 셈이다. 통상 현금성 지원 정책은 저축이나 채무 상환으로 흘러가 소비 진작 효과가 약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정선의 민생회복지원금은 달랐다. 정책의 구조 자체가 ‘즉시 소비’를 전제로 설계돼 단기간에 소비 진작이라는 정책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했다.

정책은 성과로 이어졌다. 시행 한 달이 채 안된 지난 4일 기준, 정선군 전체 대상자의 95% 이상이 지원금을 수령했다. 단순히 많은 사람이 돈을 받았다는 숫자 이상의 의미가 있다. 정책에 대한 군민의 신뢰와 참여 의지가 수치로 드러난 것이다.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공무원의 땀과 정성, 군민과의 신뢰가 빚어낸 결과다. 이는 단기간의 수치에 머물지 않고 지역 공동체의 회복력 회복이라는 더 큰 지표로 읽힌다.

물론 우려도 없지 않다. ‘이런 지원이 과연 지속 가능하냐’, ‘타 지역과의 형평성은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정선의 사례는 명확히 말한다. 지역의 특수한 자원을 지역민의 삶에 되돌리는 방식은 충분히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특히 강원랜드는 애초에 폐광지역 경제 회복과 주민 복지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기업이다. 그 수익이 지역민의 생활 안정과 상권 활성화에 사용된다면, 이보다 더 설립 취지에 부합하는 예산 집행은 없을 것이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정책이 단발성 이벤트가 아닌, 정선군 행정 철학의 변화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즉, ‘무엇을 줄 것인가’보다 ‘어떻게 순환시킬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물이다. 자칫 포퓰리즘의 프레임에 갇히기 쉬운 현금성 지원 정책을, 정선군은 ‘지역 맞춤형 순환경제 모델’로 풀어냈다. 지역 소멸과 인구 감소, 경제 침체라는 복합 위기 앞에서 정선은 정공법을 택했다. 지역이 가진 자산을 가장 의미 있게 사용하는 방식으로, 지역 주민에게 응답한 것이다.

이제 지방정부는 단순 행정 집행자가 아닌 ‘기획자’가 되어야 한다. 지역 자산을 활용해 어떤 구조를 만들고,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담은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지방자치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포퓰리즘이냐, 아니냐를 따지기보다, 그것이 지역에 실질적 효과를 가져왔는지를 먼저 묻는 시선이 필요하다. 정선군은 그 답을 정책이 아닌, ‘현장’에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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