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오감강원]운명은 구름처럼 다가와 사랑은 봄처럼 피어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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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천 거례리 수목공원

주위를 둘러싼

소음은 사라지고

내 안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순간.

‘삶’이 숨을 고르고,

‘쉼’이 내 안에

시나브로 내려앉는 시간.

고요한 자연이 건네는 숨결,

그 안에 스미는 치유의 따스함,

이 모든 것을 담은 것이

‘오감 강원 쉼(Rest)’이다.

화천군 하남면 거례리 484-2번지 ‘거례리 수목공원’.

지난달 28일. 조금 추웠던 봄날. ‘거례리 사랑나무(이하 사랑나무)’ 앞에 섰다. 가지마다 생명의 색, 연둣빛 새싹의 수줍음이 알알이 맺혀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3월의 사랑나무는 아직 갈색의 겨울을 벗지 못한 채 앙상한 가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아마도 박수근의 나목(裸木)이 이런 모습이었지....

당황도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흰 구름들이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유유자적 부유하다 그만 나뭇가지에 걸려 흐드러진다. 마치 누군가 정성스레 걸어 놓은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나뭇가지에 휘감긴 구름의 모습에서 예기치 못한 봄의 선물을 발견한다. 푸릇한 새잎 대신, 하얀 구름이 꽃처럼 내려앉은 모습은 봄이 선물한 또 다른 기적이었다. 이번 봄은 그렇게, 하얀 솜사탕처럼 스며들고 있었다.

‘나홀로 나무’라고 부른단다. 그 모습이 너무 생뚱맞아 ‘왕따나무’로도 불린다나. 여러 설들이 있지만 이 나무가 어떻게 사랑나무라는 예쁜 이름을 품게 된 건지 알 수 없다. 다만 이곳에서 사랑을 맹세하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말들이 꽤나 널리 퍼져있는 건 사실이다. 여름이나 가을에 만날 수 있는 나무의 자태가 가히 압도적이지만 호수같은 강을 바로보며 느끼는 나홀로 쉼과 유유자적의 운치는 봄이 더 나은 듯하다. 게다가 하루가 다르게 녹색의 휘장을 두르고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변신하는 모습을 목도하는 계절이 또 봄이니 “불역낙호(不亦樂乎)아”.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걸음을 옮겨 나무 아래 그네 의자에 앉아본다. 그리고 시나브로 흐르는 북한강, 그 흐름을 응시한다. 햇살을 한껏 머금은 강줄기가 한낮의 밝음보다 더 밝은 빛을 자꾸만 뱉어 낸다. 아니 머금었다 뱉었다를 반복한다. 거기에 느렸다 빨랐다까지 가세해 온통 반짝반짝의 향연이다. 그렇게 바람이 만들어낸 일렁임이 수면을 조각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휙-” 모자를 날릴 것처럼 강바람이 간명하게 불어닥치고 또 닥친다. 때아닌 춘설이 오락가락해서인지 4월이 턱밑인데도 기세가 제법 매섭다. 그래도 바람의 결은 봄에 더 가깝다. 그렇다고 또 여름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느낌을 놓고 보자면 ‘푸근함’ 보다 ‘포근함’이 더 어울린다고 해야 할까. 딱 그정도, 한뼘 아니 반뼘 정도의 차이다.

◇‘반지교’라 불리는 칠석교의 모습.

또다른 곳으로 향한다. 사랑나무와 오버랩되고 있는 그곳. 바로 ‘반지교’다. 그 다리가 눈 안에 들어온 후, 독특한 모양새가 주는 궁금증이 그곳을 향해 하릴없이 걷게 한 이유라면 이유다. 멀리 보이는 반지교는 말 그대로 반지를 닮아 있는, 푸른 강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반원이 다리 한가운데 손잡이 처럼 달려 있는 모습이다. 이제보니 닮은 것이 아니라 영락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사랑나무’ 지척에 반지를 머리에 인 ‘반지교’까지 있으니 더 볼 것 없이 사랑나무를 설명할 때 쓰이는, ‘사랑이 맺어지는 장소’라는 수사(修辭)에는 설득력이 차오른다.

사랑나무를 떠나 우회전. 그리고 원형의 광장을 지나치면 ‘화천산천어 파크골프장’ 입간판이 등장한다. 그러고 나면 이내 어깨를 나란하고 있는 서로 다른 세 종류의 길을 만나게 된다.

하나는 맨발로 걷는 황톳길, 또 다른 하나는 자전거 도로, 나머지는 자작나무 산책길이다. 황톳길은 맨발이어야 하고 자전거 도로는 자전거에 양보했으니, 선택지는 오직 자작나무 산책길 뿐이다. 폭이 좁아 한명이 걸어야 적당하다. 말 그대로 ‘1인분 길’이다. 그 길을 타고 770m 정도 걷고 나면 반지교 입구에 다다른다. 이쯤 되면 이정표를 통해 반지교의 본명(?)이 칠석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반지교는 물위에 떠 있는 부교와 교각교가 합쳐진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는 다리다. 통통 소리를 들으며 부교 구간을 모두 걷고 나면, 나무 계단으로 된 교각부분에 접어드는데, 계단을 오를 때마다 반지의 형태가 조금씩 조금씩 드러난다. 마치 프러포즈 반지가 눈 앞에 다가오는 느낌이다. 그렇게 정상에 다 올라서면 반지의 온전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반지의 세팅 부분에는 옥색 보석 모형이 들어 있는데 햇살 가득한 날 시선을 옮기고 옮겨 태양을 보석 안에 잡아두면 마치 보석이 빛나는 듯 보인다. 그렇게 빛을 담는 순간, 당신의 봄날도 조금은 특별해질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다리의 반대편도 똑같은 구조를 하고 있다. 그래서 칠석교인가 보다. 멀리 보이는 사랑나무에서 시작된 사랑의 여정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사랑은 때때로 기다림 끝에 너와 나 사이에 놓이는 다리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누군가를 위해 이 다리를 건널 당신에게도, 봄은 그렇게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당신의 봄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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