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조선시대의 술집=조선시대의 술집으로는 주막, 내외주가, 기방, 선술집 등 다양한 형태가 존재했다. 첫째, 주막은 주로 막걸리(탁주)를 파는 곳으로, 단순히 술만 파는 것이 아니라 식사도 제공하고, 숙박업도 함께 하는 장소였다. 이곳 주막에서 막걸리를 먹을 수 있었던 사람은 당시 중인 이상의 사람이었다. 당시에 쌀밥 구경조차 제대로 하기 어려웠던 서민들이 그 귀한 쌀로 만든 막걸리를 먹는다는 것은 쉽지 않았던 터이다.
둘째, 내외주가(內外酒家)는 조선후기에 중인 이상 계층의 과부들이 생계를 위해 술을 파는 주점을 말한다. 외간남자와 얼굴을 대하지 않고 내외하며 술을 판매한다고 하여 내외주가라고 하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가정집 형태인데, 대문 옆에 ‘內外酒家’라고 써 붙여 술파는 곳임을 알렸다. 여주인은 안에서 술상만 차리고, 술상을 내가고 들여오는 것은 심부름꾼이 대신했다.
셋째, ‘기방’이란 곳은 양반층에게 일정한 문화적 소양을 갖춘 기생이 시중을 드는 술집을 말한다. 이에 비해 ‘색주가’는 접대부가 노래도 하고 아양을 부리며 시중을 드는 술집을 일컫는다. 넷째, 병술집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는 지금으로 말하면 일종의 보틀샵이다. 즉 병에 담은 술을 파는 집으로, 소주나 약주는 제조장에서 사와서 판매하고 탁주만은 직접 만들어 판매하였다고 한다.
다섯째, ‘선술집’은 앉는 의자가 없어 서서 술을 마신다고 하여 선술집이라고 하였다. 일명 목로주점(木壚酒店)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목로’란 술잔을 놓기 위해서 쓰는 좁고 기다란 널빤지를 말한다. 목로주점에서는 술을 시키면 안주가 함께 나와, 술 한잔에 안주 하나 먹고 갔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포장마차와 비슷하다. 밤새도록 장사하는 선술집을 ‘날밤집’이라고도 하였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시대에는 소주를 큰 잔으로 안주 없이 파는 ‘다모토리’라는 선술집도 있었다.

2) 조선시대에 웬 폭탄주?=현재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폭탄주가 있다. 맥주에 소주를 타서 먹는 ‘소맥’, 위스키에 맥주를 타서 먹는 고전적 폭탄주, 막걸리에 사이다를 섞어 마시는 ‘막사’도 있다. 섞는 술의 비율이나 섞는 술의 순서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따라 맛이 달라지고, 섞는 기술은 가히 예술이라고 할 정도로 화려한 모습을 자랑하기도 한다.
폭탄주가 빨리 먹고 빨리 취하려는 술문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서민들이 비싼 증류주를 싸게 먹기 위한 방법으로 고안된 것인지는 몰라도, 여하튼 폭탄주는 다양한 술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것만은 확실하다.
조선시대에도 오늘날의 폭탄주와 유사한 ‘혼돈주(混沌酒)’라는 술이 있었다. 원래 조선의 ‘혼돈주’는 술을 먹는 방식이 아니라 술의 제조 방법을 말하는 것이었다. 여름에 석임을 활용해 3일만에 빚는 속성주 제조방식인 것이다. 그런데 일제 감정기때의 조리서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는 오늘날의 폭탄주와 유사하게, 막걸리에 소주를 섞어 먹는 방법으로 혼돈주를 소개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혼돈주는 찹쌀로 빚은 막걸리에 소주를 타서 먹는 것이다. 좋은 소주 한잔을 좋은 막걸리 반 사발에 따르되 가만히 한 옆으로 일 분동안을 따르게 되면 소주가 밑으로 들어가지 않고 위로 말갛게 떠오른다. 이때 마시면 다 마시기까지 막걸리와 소주를 함께 마실 수 있게 된다. 막걸리는 차고 소주는 더워야 좋으며 소주로 홍소주를 넣으면 빛깔이 곱다. 맛은 매우 좋으나 아무리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라도 다섯 잔 이상은 더 마실 수 없을 정도로 취하는 술이다.”
‘섞는 비율’은 막걸리 반 사발에 소주 한잔이라고 하였으며, ‘섞는 순서’는 막걸리를 먼저 따르고 소주를 다음에 따른다고 하였다. ‘섞는 방법’은 두 술을 저어서 혼합하는 것이 아니라 소주가 막걸리 위에 뜨도록 하는 것이다.
두 가지 술을 서로 잘 섞이게 하려면,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을 먼저 따르고, 그 위에 도수가 낮은 술을 따르면 두 술이 잘 섞인다. 반대로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을 나중에 따르면 도수가 높은 술이 위로 올라와 잘 섞이지를 않게 된다. 오늘날에도 이 방법을 활용해 막걸리와 한국의 전통 소주를 섞어 먹어봄직 하지 않을까?

3) 술이 약이다?=조선시대에는 술을 약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 방법으로는 첫째, 술 자체가 약이 되는 경우이다. 몸이 아프거나 허약할 때 술을 마시게 하였다. 술은 성질이 뜨거워서 춥고 배고픈 옛날에는 차가운 몸의 열을 올리는 기능을 수행했다. 기록에 따르면 홍역에 걸린 환자에게 술을 마시게 하여 땀을 흘리고 몸속의 사기를 발산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술 자체가 약이 되어, 술을 약주라고 칭하기도 하였고, 임금의 하사품으로 술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술을 일종의 약으로 보고 임금이 먹는 술은 내의원(內醫院)에서 빚었고, 매일 임금에게 술 마시기를 권하기도 하였다.
둘째, 약재를 술에 넣어 약효를 침출시켜 사용하였다. 중종때 온역으로 불리운 역병이 유행하여 도소주(屠蘇酒)를 처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도소주는 아주 매운 맛이나 몸서리 쳐지는 쓴맛의 재료들로 빚은 술이다. 도소주는 처음에는 온역을 쫒는 술의 의미가 강했으나 차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세시풍속으로 자리잡았다.
동의보감에 ‘오가피주’는 “허리와 등골이 아프거나 두 다리가 저리고 뼈마디가 조여드는 증세에 효과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창포주’를 먹으면 정신이 또렷해지고 장수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외에도 동의보감에는 천문동주, 지황주, 백자주, 상실주, 오정주 등 다양한 술들이 치료용으로 소개되어 있다.
셋째, 약을 먹을 때 술을 함께 마시게 하여 약의 흡수를 도왔다. 술이 혈관을 타고 돌면서 약기운을 온 몸에 빠르게 전달했던 것이다.
넷째, 술을 법제용으로 사용하였다. 주세(酒洗)는 산수유나 당귀 등을 술에 씻어서 사용한 것을 말하고, 주구(酒灸)는 거북껍질과 녹용 등을 술에 구워 사용한 것을 말하며, 주증(酒蒸)은 닥나무 열매인 저실자를 술에 쪄서 법제한 것을 일컫는다.

4) 술을 데워먹는다?=우리는 술을 시원하게 아니면 차게 먹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술을 데워먹지를 않는다. 그런데 의외로 술을 데워먹는 문화가 많다. 일본은 데워먹는 사케를 ‘오칸’이라고 한다. 데우면 맛이 한층 부드러워지고 향이 짙어진다. 일본의 ‘히레사케’는 복어 지느러미를 태워서 따뜻한 사케에 넣어 먹는 술을 말한다. 히레사케는 일본이 2차대전 당시 군인들에게 배급할 사케를 대량 제조하는 과정에서 품질이 떨어지는 술이 생산되자, 그 맛을 가리기 위해 태운 복어 지느러미를 넣었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중국에도 황주 중에서 소흥주(사오싱주 紹興酒)는 데워 마셔야 풍미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서양에서는 겨울에 차가운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 와인을 데워서 먹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는 술을 데워먹기도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음복에 데운 술을 쓰게 하라’는 기록이 있고, 『양주방』에 창포주를 데워 먹으면 건강해진다는 기록이 있다. 약주와 막걸리 모두 데워 먹을 수 있다. 술을 데우면 술속의 독소가 발산하고 향기가 더해진다. 술을 데울 때에는 사람의 체온만큼 데우면 된다. 주의할 점은, 술을 데우면 알코올 도수가 올라간다는 것이다. 대략 알코올도수 10%~15%의 술을 데워먹는 것이 적당하다. 20% 이상의 술을 데워먹으면 체내에 열이 한꺼번에 올라와 위험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술을 데워서 감기치료용 또는 예방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달걀술(다마고 사케)이라고 하여, 감기에 걸리면 뜨겁게 데운 정종에 날달걀을 풀어 마신다. 프랑스에서는 겨울에 감기예방용으로 뱅쇼(Vin Chaud)를 만들어 먹는데, 뱅쇼는 와인에 과일, 계피, 정향을 넣고 끓인 것을 말한다. 뱅쇼와 비슷한 것으로는, 독일의 글루바인, 미국 멀드와인, 한국의 모주 등이 있다. 한국의 모주는 막걸리 앙금에 대추, 계피, 생강, 갈근, 감초 등을 넣고 끓인다. 모주는 과음한 다음 날 해장에도 좋다. 우리도 겨울에는 청주를 따뜻하게 데워 먹으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