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전시

폐광촌의 기억을 초현실주의적 화폭에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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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승선 작가 개인전 ‘기억의 서식지’
- 4월9일까지 강릉 갤러리 Soul(소울)

◇최승선 作 ‘변두리 동화’, 97x162.1cm, oil on canvas, 2024

강원도 폐광촌의 역사에 개인적인 기억을 덧대는 작업을 하고 있는 정선출신 최승선 작가의 개인전이 다음달 9일까지 강릉 갤러리 Soul(소울)에서 열린다. ‘기억의 서식지’를 타이틀로 한 이번 전시는 탄광촌에서 나고 자란 최작가가 경험한 공간의 변화와 그 속에서 살아남은 기억들을 초현실적인 화법으로 풀어낸 작품들로 구성돼 있다. 최작가는 정선 사북에서 성장하며 탄광촌의 흥망성쇠를 직접 목격했다. 1980년대 이후 석탄 산업이 쇠퇴하면서 많은 광부와 가족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고, 산업의 쇠락과 함께 지역 공동체도 변화해갔다. 그는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작품 속에서 재조명하며, 공간에 새겨진 기억과 정체성을 회화적으로 탐구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기억을 단순한 과거의 조각이 아닌, 시간이 지나도 생명력을 지닌 살아 있는 존재로 묘사한다. '기억의 서식지'라는 전시 제목이 암시하듯, 그는 기억이 특정한 공간과 환경 속에서 계속해서 형태를 이루며 존재한다고 믿는다.

◇최승선 作 ‘잔야’, 30×60cm, oil on canvas, 2024

◇최승선 作 ‘going home’, 72.7×60.6cm, 2024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무는 그의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세가지 주제로 나뉘어 관객들을 맞이한다. 먼저 1980년대 말 탄광산업의 쇠퇴기를 배경으로 한 ‘잔야’, ‘골마을’ 등의 작품들에서는 쇠락해 가는 마을의 풍경이 다채로운 색채로 표현된다. 작가는 검은 석탄의 기억 대신 생기와 온화함이 감도는 장면들은 폐허 속에서도 이어지는 삶의 생명력을 포착한다. 이어지는 ‘field(필드)’, ‘going home(고잉 홈)’, ‘서쪽 숲’ 등의 작품 작가 자신의 자화상과 가족이 배경 속에 스며든다. 이들 작품은 부재(不在)로 인한 상실과 결핍 그리 변화의 감정을 내면적 풍경으로 구현하면서도, 현실을 이상적인 공간으로 치환하려는 태도를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하늘을 부유하는 거북’은 드넓은 들판과 바다 위를 떠도는 거북의 형상을 통해, 고향의 기억을 싣고 이상향으로 항해하는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최승선 作 ‘서쪽숲’, 72.7×116.8cm, oil on canvas, 2021

최 작가의 작품 세계는 초기의 어두운 색조에서 점차 코발트블루와 파스텔톤으로 옮겨가며 변화해왔다. 이는 고통의 기억을 치유하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 이후 자연과 생명에 대한 관심이 깊어진 작가의 내면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개인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역사와 공간이 기억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탐구하는 자리다. 탄광촌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출발한 최작가의 기억은 개인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의 작품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자신의 기억과 고향에 대한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며, 예술을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최승선 작가와의 만남’ 행사는 오는 29일 오후 2시에 갤러리에서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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