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춘추칼럼]들어라, 봄의 속삭임들

장석주 시인

◇장석주 시인

3월 다 가는데 날은 여전히 스산하다. 영등할매가 오는 봄에 심술 내듯 한파를 몰아온 탓이다. 영등할매 늦추위에 장독이 깨지고 중늙은이는 얼어서 죽는다고 했다. 영등할매는 음력 이월 초하루에서 보름까지 땅에 머물며 비와 바람을 쥐락펴락 다스리는 가신(家神)이다. 이월 초하루를 영등날이라고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지냈다. 고향 선배인 박용래 시인도 영등할매에 관한 시를 남겼다. ‘김칫독 터진다는 말씀/2월이 떠올리라/묵은 미나리깡 푸르름 돋아/어딘서가 종다리 우질듯 하더니만/영등할매 늦추위/옹배기물 포개 얼리니/번지르르 춘신 올동말동’.(박용래 ‘영등할매’)

며칠 전엔 절기를 잊은 폭설로 내가 사는 파주는 온통 흰눈으로 뒤덮인 설국으로 변했다. 저 멀리 보이는 심학산 봉우리도 눈 쌓여 희끗희끗 했다. 작년 이맘때 출판단지 안 매화나무 검은 가지마다 밥풀떼기처럼 자잘한 흰꽃이 피었었다. 올해는 한파 영향인지 매화꽃 필 기미가 안 보였다. 올 꽃소식은 유난히 늦은 셈이다. 옛 어른들은 아침이 오기 직전 새벽이 가장 어둡고, 봄 오기 전 추위가 매섭다고 했으니, 옛 어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이맘땐 묵은 김치에 질린 탓에 봄동 같이 상큼한 푸성귀 햇것이 먹고 싶어진다. 요즘 먹을 반찬이 마땅치 않다고 툴툴대던 아내가 오늘 아침엔 달래를 넣어 끓인 된장찌개, 갓김치, 구운 고등어를 상에 올렸다. 공기밥 한 그릇을 거뜬하게 비우고 나와서 교하도서관 열람실에 앉아서 반나절을 읽고 싶던 책을 찾아 읽었다. 책을 덮고 도서관을 나와 쾌청한 하늘 아래 오솔길을 걸었다. 찬 바람을 맞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중앙공원 분수대의 물은 얼어있는데, 얇은 얼음장 아래에선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었다.

오솔길을 걸으며 자꾸 ‘복사꽃 피고, 복사꽃 지고, 뱀이 눈 뜨고, 초록 제비 묻혀 오는 하늬바람 우에 혼령 있는 하눌이여. 피가 잘 돌아… 아무 병도 없으면 가시내야. 슬픈 일 좀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라는 싯구를 혼자 중얼거렸다. 미당 서정주의 ‘봄’이란 시다. 아무 병도 없으면, 슬픈 일 좀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라니! 시인이란 무탈하게 지나는 봄날의 심심함도 그냥은 견디기 힘든 족속인 모양이다.

저녁밥 먹고 일찍 잠든 날엔 꼭 새벽에 한번쯤 깨어나곤 한다. 식구들 다 잠든 방에서 혼자 깨어나 앉아 있으면 적적하다. 고요한 한밤중 누군가 육체라는 조그만 막사(幕舍) 안에 갇힌 채 ‘도와 달라!’고 외친다. 그는 몸부림친다.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나는 깜짝 놀라 두 귀를 쫑긋 세우고 그 외침에 집중한다. 물론 내가 들은 외침은 환청에 지나지 않는다. 내 안에서 몸부림치고 웃으며 부르짖는 자는 누구인가? 그는 내 안의 또 다른 나, 숨어 있는 가 아닐까?

곧 매화 꽃망울 터지고 제비꽃 싹 트고 울 아래 작약은 움이 돋을 테다. 봄날은 그렇게 만개한다. 젊은이들의 심장 속에선 춘정이 돌아 새로운 사랑도 시작되리라. 그건 다 생명의 약동에 따른 일들이다. 큰 야망을 품고 살라고 하고 싶지는 않지만, 오, 지금은 봄이 아닌가? 살아있다는 건 꿈틀대는 것, 갈망으로 타오르는 피의 명령에 무언가를 하는 것, 죽을 만큼 힘을 다해 무언가를 이루는 것! 이렇게 밥이나 축내고 군고구마 몇 개나 입속에 우겨넣으며 군살이나 찌우고 멍청하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하다못해 방바닥에서 머리카락 몇 올이라도 정성들여 줍고, 양지 바른 데서 겨우내 긴 손톱 발톱이라도 깎자.

지아비는 지어미에게 제주 귤 하나라도 까서 건네자. 눈꼽챙이문 밖 하늘에 떠가는 구름 몇 조각이라도 바라보자. 월동 마치고 북녘 고향으로 떠나는 쇠기러기의 무사귀환이라도 빌어주자. 불타 올라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기뻐하라. 몰두하라. 삶도 죽음도 두려워마라. 이건 삶의 숭고함에서 나온 명령이다! 살아서 비명이라도 지르라. 살아 있다고 큰소리로 외쳐라. 오늘이 마치 생의 마지막 날인 듯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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