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작년에 민사재판을 담당하다 올해 다시 형사재판을 담당하게 되었다. 업무이동을 마친 후 계류 중인 사건들을 살펴보며 놀라웠던 점이 있었다. 수사기관이나 금융기관이 예전부터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필자가 2년 전에 담당하였던 형사 재판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 사건이 여전히 많았던 것이다.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은 수사기관이나 금융기관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부터 속은 피해자들이 지급하는 피해금을 현장에서 직접 수거하고, 이를 다른 조직원에게 전달하는 일을 담당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러한 설명을 듣고 떠오르는 현금 수거책의 이미지는 악질적인 범죄자이지만, 예전에 형사재판을 하며 보았던 현금 수거책의 모습은 대체로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20대의 어린 학생부터 40~50대의 부모도 볼 수 있었다.
칼럼을 읽는 분들이라면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보이스피싱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지?’라는 의문이 제일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그 면면을 들어다 보면 안타까운 경우가 적지 않았다. 재판에 넘겨진 많은 사람들이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수거하는 범죄임을 명확하게 알고 돈을 수거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생계가 어렵거나 돈이 급하게 필요한 상황에서 아르바이트를 검색하던 중 많은 급여를 주는 광고를 보고 연락하게 된다. 광고를 올린 고용주는 금융기관 등이라고 밝히면서 고객의 편의를 위하여 고객의 돈을 직접 받아서 전달하거 이체해주면 되는 것이 일의 전부고, 급여와 별도로 식비와 교통비도 지급한다고 말한다. 고용주의 설명만 놓고 보면 돈만 받아 전달해주는데도 많은 급여를 주고, 복지수준도 매우 훌륭한, 아주 양질의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들의 고용주는 바로 보이스피싱 조직원이다.
아르바이트를 해보았거나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위와 같이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고용주는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거나 적어도 위와 같은 구직 조건이 다소 이상하다고 의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려운 사정이 의심스러운 사정을 애써 무시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가 싶기도 하고, 보이스피싱 조직의 진화하는 구인방법(처음에는 부동산 현황조사와 같이 위법하지 않은 업무를 지시하여 신뢰를 쌓은 다음 정상적인 업무인 것처럼 가장하여 현금수거 업무를 부탁한다)도 의심의 정도를 좀 더 낮추는 것에 기여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러한 고액 아르바이트의 유혹에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범죄에 가담할 의사가 전혀 없었고, 자신 또한 보이스피싱 조직에게 속았다고 생각하기에 수사기관 조사 당시부터 현금수거 업무가 보이스피싱 범행임을 알지 못하였다고 다투기도 한다. 범행의 고의를 다투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제출된 증거들이나 피고인의 주장을 찬찬히 살펴보면 제3자의 시각에서는 쉽게 의심을 거두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점, 메신저로 대화 몇 마디만 나누면 채용이 되는 점, 쉽게 채용되었음에도 몇 천만 원에 이르는 돈을 직접 수거해오는 업무를 맡기는 점, 비교적 단순한 업무임에도 많은 급여를 지급하는 점, 지급받은 돈을 여러 명의 이름으로 이체하도록 지시하는 점과 같이 정상적인 업무임을 의심할 수 있는 부분은 차고 넘친다.
작년 말경 대법원에서는 보이스피싱 현금수거 업무를 담당한 사람에게 범행의 고의가 있는지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하였다(대법원 2024. 12. 12. 선고 2024도10141 판결). 그 요지는 채용과정의 구체적 내용, 업무의 특성, 수거한 현금의 이체방법, 지급받은 보수의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는 것이고, 보이스피싱 범행과 관련성이 있다고 인지할 수 있는 경우에도 범죄의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다소 이상한 일이라고 의심할 여지가 있었다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려운 사정을 어떻게든 해결하여야 하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칫 의심의 끈을 놓쳐 고액 아르바이트의 유혹에 넘어가 범죄자로 전락하게 될 수 있는 점을 유의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