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언

[언중언]빈집

사람이 떠난 집은 쉽게 늙는다. 지붕은 한순간에 기울고 문짝은 힘없이 흔들린다. 그 자리에 오랫동안 서 있던 기둥도 이내 휜다. 벽에 남겨진 그림자와 창가에 걸린 바람이 이곳에 사람이 살았음을 증명하지만 시간이 그 모든 흔적을 지운다. ▼강원도의 산자락 곳곳에도 그런 빈집이 늘어간다. 예전에는 툇마루에 앉아 이웃과 정을 나누던 집이었고, 저녁이면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던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먼지 쌓인 창문 너머로 어둠만이 깃들어 있다. 빈집은 단지 사람이 살지 않는 공간이 아니라 한때의 삶과 기억이 스러져 가는 곳이기도 하다. 2023년 기준 강원도 내 빈집은 8만2,552호에 이른다. 인구 1,000명당 빈집 수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다. 이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사라져 가는 마을의 맥박이자 텅 빈 골목의 그림자다. 사람 없이 남겨진 집은 금세 쇠락한다. 닫힌 문 뒤에서는 잡초가 자라고 때로는 범죄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불길이 치솟고 금이 간 벽이 허물어져 내리기도 한다. 집은 사람을 잃으면 점점 무너져 내린다. ▼빈집을 두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손을 내밀어 다시금 숨을 불어넣어야 한다. 오래된 집을 새롭게 고쳐 쓰고 청년과 신혼부부,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보금자리로 내어줄 수 있다면 빈집은 더 이상 버려진 공간이 아닐 것이다. ▼강원도는 산과 바다가 공존하는 곳이다. 여기에 삶의 자리를 다시 놓는다면 빈집은 또 다른 가능성으로 피어난다. 게스트하우스로, 공방으로, 청년 창업 공간으로 재탄생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다시 사람이 깃들도록 해야 한다. 빈집을 지역경제와 연결하고 마을과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곧 빈집을 살리는 길이다. 집은 그 자체로 삶이다. 오랜 기억이 쌓인 곳이며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자리다. 바람이 스며들어도, 빗방울이 문턱을 적셔도 다시 문을 열면 된다. 빈집이 다시 사람의 온기로 채워질 때 사라져 가는 마을의 불빛도 다시 켜질 것 같다.

피플&피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