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은 계절마다 잔치가 열리지만 가장 들썩들썩한 날은 정월대보름이다. 마을별로 척사 대회가 열리고 쥐불놀이를 하며 오곡밥을 나눈다. 척사의 한자는 ‘斥邪(나쁜 것을 물리침)’가 아니라 ‘擲柶(윷놀이)’이다. 나무로 만든 네 개의 윷가락을 던지고 도, 개, 걸, 윷, 모를 외치는 신명 나는 한판이다. 마을 주민들이 모여 새해 처음으로 뜬 보름달에 가장 먼저 비는 소원은 풍년 이전에 ‘마을의 안녕’이다. 재액(災厄), 악역(惡逆), 부정(不淨)이 마을에 들어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마을의 액막이를 위한 상징물은 역시 솟대다. 나무나 돌로 만든 새를 장대나 돌기둥 위에 앉힌 마을 수호신의 상징이다. 홍천군 북방면 본궁리는 마을 입구와 뒤쪽 모두 세우기도 했는데 마을의 불운을 막기 위한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보여준다. 배가 떠가는 형국을 뜻하는 행주형(行舟形) 지세의 마을에서는 솟대가 돛대와도 같았다. 마을이 순풍을 타고 순조롭게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농촌에 남아 있는 정월대보름 문화는 아파트 밀집 지역이 돼 버린 도시에서는 보고 느낄 수도 없는 경험, 풍경들이다. 도시는 공동체보다 개인이 더 우선이다. 자기 계발과 경쟁을 거쳐 ‘더 나은 나’를 얻기 위한 열망과 투쟁의 공간이다. 도시는 ‘구별짓기’의 공간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이 개념대로 문화와 취향으로 신분을 나눈다. 아파트 가격을 비롯한 자산, 먹고 입고 즐기는 소비 수준으로 서로를 나눈다. ‘우리’라는 말이 낯선 곳이다. ▼옛 조상들이 ‘액(厄)’이라고 부른 그 무엇은 인공지능 시대에도 있다. 전 세계가 연결 됨으로 인한 불확실성, 기후 변화로 인한 재난의 위험,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등이다. 개인이 감당하지 못할 ‘액’의 존재를 알고, 모두가 함께 겸손히 하늘의 도움을 구하는 것. 정월대보름 문화에 담긴 ‘진심’이 아닐까 싶다. 도시인들을 위한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으로 특산품도 좋지만 이런 ‘진심’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