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의 문턱인 입춘(3일)이 지난 지 일주일이다. 다음 주 화요일(18일)은 눈이 녹아서 비가 되고 초목에 싹이 튼다는 우수다.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겨울을 저만치 따돌렸는가 했다. 그런데 올겨울 최강 한파가 입춘과 함께 나타나 지속되고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봄을 기대했던 마음이 성급했나 보다. 떠나고 싶지 않은 겨울의 심술처럼 느껴진다. 계절의 변화가 기차 시간처럼 정확하게 24절기와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보다. ▼1973년부터 올해까지 53년간 서울의 입춘 평균 기온을 살펴보면 영하인 적은 36차례다. 최고 기온이 영하, 즉 종일 영하에 머물렀던 적도 12차례다. 입춘 무렵에는 추위가 찾아온다는 옛말이 결코 헛말이 아닌 것이다. 가장 추웠던 입춘은 2006년으로 최저 기온이 영하 13.1도까지 곤두박질쳤다. 최고 기온도 영하 4.6도에 불과했다. 이번 추위에 강원지역은 최저 기온이 영하 22도 이하까지 떨어졌다. 1983년 이후 39년 만에 2월 중순 관측 사상 가장 낮은 기온을 기록했다. ▼강력한 한파의 원인은 북극의 기온이 오르면서 제트기류가 힘을 잃어 냉기류가 남하해 한반도까지 혹한이 찾아오는 것이다. 지구의 심각한 온난화로 인한 재앙을 다룬 영화 ‘투모로우’처럼 지구 온난화의 역설이 살인적인 한파를 가져온 것이다. 북극 온난화는 예상보다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북극은 1979년 이후 지구 평균보다 4배가량 빠르게 더워지고 있다. 입춘 한파가 달갑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다. 환경이 파괴되면서 중병에 걸린 지구를 돌아보게 하는 이번 한파다. ▼1940∼1980년대 날씨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혹한’이었다. ‘동장군’이란 말이 1950년대 주요 키워드로 꼽혔을 정도다. 한파는 바깥 노동으로 먹고사는 일용직이나 노숙인, 연탄 한 장 살 형편이 안 되는 어려운 이웃들에겐 저승사자만큼이나 무서운 존재다. 그렇지 않아도 고환율·고유가·고물가의 3중고가 다시 경제와 서민의 삶을 짓누르고 있는 때다. 이번 입춘 한파가 잊혔던 그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박종홍논설위원·pjh@kw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