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랫동안 사람들의 왕래가 있던 길은 시간의 길이 만큼이나 삶의 향기가 묻어 있다. 이 땅에 존재했던 역참은 사람과 문서 이동 뿐만 아니라 생활의 중심이기도 했다. 지금 역세권은 문화나 생활이 편리해 투자로서 가치가 있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과거와 다르지 않다.
강원 도내 국도 중에 56호선 국도는 문화적 향기를 품고 있다. 또한 시작과 끝이 강원이라 특별한 의미를 갖기도 한다. 철원∼양양선이라고도 불리는 이 도로는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김화읍을 기점으로 화천군, 춘천시, 홍천군 등 북부 내륙지역을 ‘U’자형으로 관통하여 양양군에 이르는 도로이다. 총 연장은 187.6㎞로 포장도로 중 2차선 구간이 183.8㎞에 달하며 4차선 구간은 2.1㎞에 불과하다. 1987∼1989년 춘천∼동면 구간을 시작으로 1991∼1995년 갈천∼양양 구간이 완공되었다.

국도 대부분 구간이 내륙 산간지역을 관통하기 때문에 도로 폭이 좁고 기울기가 심한 편이며 장거리 간선 통행보다는 산악 드라이브를 즐기는 여행자나 군용 차량들의 통행 빈도가 높다. 또한 국도 주변에는 수려한 산, 계곡, 고개, 휴양림, 호수 등의 관광 자원이 많아 계절에 따라 행락객이 몰리기도 한다. 국도 제5호선, 제31호선, 제44호선, 제46호선 등과 일부 구간이 중복되거나 교차하며, 동홍천 IC에서 서울양양고속도로와 연결된다.
이 국도는 진경산수화를 창시한 겸재 정선의 그림을 비롯한 화가들의 발자국이 남겨져 있다. 철원 삼부연, 정자연, 김화 화강백전, 포천 화적연, 양양 낙산사, 패주 조세걸의 화천 곡운구곡도, 진재 김윤겸의 농수정, 명월계, 춘천의 소양정, 단원 김홍도의 낙산사, 관음굴, 복헌 김응환의 낙산사, 설호산인 김화중 낙산사 등 즐비하다. 특히 겸재 정선은 시작과 끝에 위치한 도시의 그림을 후세에 남기고 있어 국도 56호 이름을 겸재 정선 도로로 명명해도 좋을 듯하다.
겸재 정선은 스승이 있던 철원을 아주 특별하게 생각한 듯하다. 철원군 주변 4곳(삼부연, 정자연, 화적연, 화강백전)에 진경산수화로 남기고 있다. 특히 삼부연은 스승 삼연 김창흡의 자취가 물씬 머금고 있는 곳이라 그림에도 높은 학문의 위상을 그려놨다. 장쾌하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와 소나무들은 스승에 대한 작가의 느낌을 그대로 반영돼 있다. 낙산사 또한 변하지 않은 소나무의 기상과 동해의 청명한 파도를 통해 작가와 스승이 꿈꾸는 세상을 표현했다.
그 길 국도 56호선 중간에 왕실 소나무를 알리는 황장금표가 있다. 홍천군 내면 명계리 산 44번을 네비게이션에 찍고 구불구불 구룡령 넘어간다. 현장에는 황장금표가 보이지 않고 고랭지 채소밭이 나온다. 황장금표는 현재 보존을 이유로 홍천박물관으로 옮겨왔다. 명개리는 지금은 홍천과 양양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나 과거 조선시대에는 행정구역상 양양, 강릉에 속했던 지역이다. 금표는 구룡령을 넘는 56번 국도를 따라 있는 계방천의 옛길 가장자리 밭에 있었다. 남쪽으로는 오대산, 북쪽으로는 방태산 등 큰 산에 맞닿아 있고 강을 통해 소나무를 운반하는 용이한 입지를 갖추고 있다.

홍천박물관은 기존 위치에서 보존이 어려워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전하면서 바위로 두 개로 나눠졌다. 오른쪽 바위에 암각이 있다. 18자의 한자가 씌여 있으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襄陽 箭林 黃腸山 南界白里 周回三白 三十里(양양 전림 황장산 남계백리 주회삼백 삼십리). 양양의 전림은 황장산으로 남쪽으로 백리에 이르고 둘레가 삼백 삼십리다. 양양의 소나무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림자원이다.
명개리 인근에는 관광명소가 많다. 광원리에는 홍천9경의 하나인 삼봉약수도 있다. 실론골에 위치한 약수터로 조선 시대에 실론약수, 실룬약수라 불렀다.가칠봉을 중심으로 좌봉은 응복산, 우봉은 사삼봉 등 3개의 봉우리로 둘러싸여 있어 삼봉이라 불리우며, 삼봉의 중심지에 삼봉약수터가 있다. 세 봉우리 가칠봉, 응복산, 사삼봉의 정기를 받은 약수에는 철분, 불소, 탄산이온, 망간 등이 들어있어 위장병, 피부병, 신장병, 신경쇠약 등에 효험이 있다고 널리 알려져 있으며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천연기념물 제530호약수다.
글·사진=김남덕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