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여 마카 탄광이드래요”…강릉 정동진이 동해안 최대 탄광도시 였다는 걸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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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문화 세계유산화]-탄광 디아스포라(2)
국내 최고 일출 관광지 정동진, 한때 광업소 46개 모여있던 탄광도시
기네스북 바닷가와 가장 가까운 정동진역은 내수용 석탄 전국에 보급
당시 흔적 찾기 어려워…“관광자원 확대 측면의 석탄유산 계승 필요”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강동면에 위치한 정동진역은 석탄 문화유산의 하나로 산업화 시대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지만 현재는 일출 명소와 관광지로 자리잡았다. 정동진역은 1962년 여객과 화물을 수송하는 목적으로 건설됐으며 석탄 운송을 주로 했다. 역 주차장으로 활용되는 공간은 석탄을 보관하던 역두저탄장이었다. 강릉=양원석기자

“여 마카 탄광이드래요…지약(저녁)대믄(때면) 광부쟁이들이 정동진에 다 어불레(어울려) 갖고 밥 묵고 술 묵고 다 했지.”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 2리 모래시계공원 주차장에서 만난 초로의 강릉 주민이 구수한 사투리로 옛날 이야기를 한다. 그 역시 광부 출신이다.

지난달 21일 강릉 정동진 일원, 평일이지만 겨울방학을 맞아 가족 단위 관광객과 연인들이 꽤 많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정동진은 1995년 TV드라마 모래시계의 역대급 흥행 이후 국내 최고의 일출 명소, 관광지 타이틀을 놓치지 않고 있다.

해안선과 50m 거리의 정동진역은 기네스북에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으로 등재돼 있다. KTX가 정차하면서 더욱 각광받고 있다.

정동진역은 1962년 11월 문을 열었다. 아직 관광에 대한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이다. 그런데 왜 당시 도심과 멀리 떨어진, 바다와 맞닿은 곳에 역을 세웠을까.

힌트는 정동진역을 중심으로 남북에 각각 자리잡은 넓은 공터에서 찾을 수 있었다. 지금은 수백여대의 차량을 동시 수용할 수 있는 무료주차장으로 쓰인다.

이 공터는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정동진을 비롯해 강릉 강동면 일원 광업소에서 채굴한 석탄을 쌓아두는 역두저탄장이었다. 이곳에 쌓인 석탄들은 정동진역에서 기차에 실려 서울부터 부산까지 전국으로 운송됐다. 태백과 정선, 삼척 도계에서 생산된 석탄들이 동해 묵호항에서 주로 수출길에 올랐다면 강릉 정동진역의 석탄은 비교적 저가의 내수용으로 주로 우리 국민들이 사용했다. 당시에는 묵호항과 정동진이 같은 명주군이었다.

관광지로 변모한 정동진에서는 석탄산업 시대의 흔적이 거의 사라졌지만 1970년대까지 강릉 강동면은 전국 6대 탄전으로 꼽혔으며 동해안 최대의 탄광도시였다.

탄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1988년 기준 강릉 강동면·옥계면·왕산면의 탄광은 46곳에 달했다.

흔적은 사라졌지만 주민들은 당시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춘식(60) 정동진3리 이장은 “정동진3리와 산성우1, 2리가 탄광의 중심으로 광부들이 이주해 생긴 마을이었다”며 “하지만 석탄산업합리화정책 이후 1990년대부터 사람들이 대거 마을을 떠났고 지금은 잊혀진 곳이 됐다”고 말했다.

양진석(60) 정동진2리 이장은 “어릴 적 정동초교 학생이 1,400명에 달했다. 탄광으로 일자리를 찾아온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흰 고무신이 탄 가루로 금방 새까매질 정도”라면서 “지금은 초등학생이 30여명에 불과하다. 관광지로 유명해졌지만 실제 인구가 크게 줄어든 건 큰 걱정”이라고 했다.

정연수 탄전문화연구소장은 “연탄 기근이 사회적 문제일때도 강릉에는 연탄이 안정적으로 보급됐다. 지역에서 실제 생산을 했기 때문에 강릉 주민들도 탄광의 수혜를 직접적으로 입었다”며 “관광자원 확대 측면에서도 강릉도 석탄산업의 유산을 계승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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