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환 춘천지방법원 판사
필자는 그동안 법관으로서 행정재판, 가사재판, 형사재판, 민사재판을 담당하였는데, 법원의 주요 재판 분야인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을 하며 느낀 점을 다뤄보고자 한다.
먼저 형사재판은 피고인의 유무죄 여부와, 유죄로 인정한 피고인에게 어느 정도의 형벌을 부과할지에 관한 양형(量刑)을 주된 쟁점으로 한다. 피고인은 법원의 판단에 따라 유무죄 여부가 가려지고, 유죄로 인정될 경우 인신이 구속될 수도 있다. 이처럼 형사재판의 결과가 피고인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이 매우 크고 형사재판은 피고인이 출석한 상태에서 진행되므로, 피고인과 그 가족이 자리한 형사법정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매우 무겁고 엄숙하다. 특히 판결 선고기일의 분위기는 더욱 더 무겁고 엄숙하다.
이처럼 법관의 판단이 피고인에게 끼치는 영향이 상당하기에 형사재판에 임하는 필자의 마음 또한 가볍지 않았다. 비록 1심에서 유무죄 여부와 양형 판단이 내려진 형사 항소심을 담당하였지만, 혹여 유죄로 인정된 피고인에게 억울한 점이 있지는 않을지, 피고인이 받은 형이 적절한지 여부에 대하여 법관의 양심을 다하여 판단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피고인과 변호인의 진술을 경청하고, 사건기록을 거듭 검토하며 합리적 의심 없는 정도의 증명이 이루어져 유죄를 인정할 수 있는지 고민하였으며, 설령 1심의 유죄 판단이 옳다고 판단하더라도 피고인이 조금이나마 유죄로 인정된 결과를 수긍할 수 있도록 피고인의 무죄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시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피고인의 양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다음으로 민사재판은 원고와 피고가 제출한 서면과 증거를 바탕으로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구하는 청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여부를 쟁점으로 한다. 소송대리인(변호사)이 선임되어 있으면 당사자가 출석할 필요 없이 소송대리인의 출석만으로 재판이 진행되고, 당사자에게 재판결과가 중요한 점은 형사재판과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인신 구속과 같이 당사자가 직접 체감하는 결과의 무게가 다소 낮을 수 있기에 민사법정의 분위기는 형사재판의 분위기에 비하여는 비교적 엄숙하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민사법정의 분위기와 민사재판의 결론을 내려야 하는 법관의 노력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법정의 분위기와 달리 원고와 피고가 벌이는 치열한 공방의 분위기는 형사법정의 분위기와 마찬가지로 무겁고 엄숙하다. 당사자들은 하나의 사건을 두고 자신의 주장이 정당하고 상대방의 주장은 잘못되었다고 치열하게 다투고, 주장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한 다양한 증거를 제출한다. 피고인이 형사재판에서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는 반면, 민사재판에서 상대방의 주장을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보기 어렵다. 결국 모 아니면 도의 공방 속에서 증거를 바탕으로 사실을 인정하고, 올바른 법리를 적용하여 결과를 도출하는 것은 오로지 법관이 감당하여야 할 몫이다. 이와 같이 민사재판에 있어 법관이 들여야 할 노력 또한 막중하기에 증거로 인정할 수 있는 사실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올바른 법리는 무엇인지 치열하게 공부하고 고민하며 결론을 내리고자 부단히 노력하였다.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에 관하여 느낀 바를 되돌아보니 각 재판에 있어 법관이 고민하여야 할 부분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결국 법관이 재판 분야를 떠나 당사자의 주장을 경청하고 사건을 세심하게 검토하고 적정한 결론을 내리기 위하여 고민하는 것이 제일 중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을사년 새해에는 위와 같이 느낀 바가 한낱 다짐에 그치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