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대에 알맞은 말은 아닐 수도 있지만 전통적으로 인간 생활의 세가지 기본요소는 의복, 식품, 주거공간 즉 의식주(衣食住)다. 현대사회는 휴대전화 없이 또는 SNS를 하지 않고는 단 1초도 살 수 없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나 의식주는 인간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이중 주거공간은 서민들은 쉽게 구입할 수 없는 기본요소가 되어버렸다. 좁은 땅덩어리에 5,100만명 이상의 국민이 모여 사는 대한민국은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크게 오르더니 지방에도 분양가격과 매매가격이 수억원에 달하는 주택이 넘쳐나고 있다. 서민들은 먹고 자고 쉴 수 있는 집 하나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도 내집 마련 꿈을 위해 매일 한푼한푼 주택구입자금을 모으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최근 집 때문에 수백명의 서민들이 피눈물을 흘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춘천에서 지어지던 한 민간임대아파트의 시행사가 공사비를 임의 사용한 이후 자금난을 이유로 사업을 중단했다.
318세대 입주예정자들은 계약금 및 중도금 385억원 가량을 납부했지만 시행사와 대출 실행 금융기관이 78억원을 제외한 300억여원을 임대보증금 보증기관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지정계좌에 납부하지 않았다. HUG는 지정계좌에 미입금된 금액은 보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새 보금자리 마련을 꿈꾸던 서민들은 울부짓고 있다. 40대 여성 A씨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 5층에서 평생을 지내신 노부모를 위해 신용대출을 받고, 아버지 퇴직금까지 얹어 돈을 마련해 아파트를 계약했다. 또다른 40대 여성 B씨는 직업군인 남편,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는 아들과 관사와 전·월세살이를 전전하다가 남편의 군인퇴직담보 대출금으로 인생 첫 집을 계약했지만 빚더미만 떠안을 상황에 처했다.
정부 보증기관 HUG는 계속해서 지정계좌에 미입금된 금액은 보증할 수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HUG는 이 아파트에 대한 임대보증금보증서를 2021년 3월 발급한 이후 아파트 공사가 중단될때까지 3년8개월간 입주예정자들에게 단 한차례도 보증금 미납입 상황을 고지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2023년 아파트 시행사에 보증금 정상화를 요청하는 등 1년여 전부터 사안의 심각성을 알고도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입주예정자들은 결국 시행사, 금융기관, HUG 등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청구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시행사나 금융기관의 위법행위는 분명하다. 반면 HUG는 일부 입주예정자들의 보증 전 계약쳬결 및 대출실행, 지정계좌 납부의무 안내 등에 따라 이번 사태에 책임이 없다고 강조한다. 주택도시증공사의 과실여부가 존재하는지는 향후 소송과정에서 치열한 법리다툼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많게는 1억원 이상 빚을 떠안은 서민들의 고통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주택도시보증공사 홈페이지에는 ‘한발 앞선 주거정책시행으로 국민주거안정을 이끌어 나가며 주택에서 도시까지 국민의 더 나은 삶을 책임지는 주택도시금융 전문 공기업’이라는 안내 글이 게시되어 있다. 임대보증금 피해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려서는 안된다. 인간 생활의 필수 기본요소를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는 의무를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