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호등]석탄산업과 교통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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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 정치부 차장

‘석탄은 산업의 혈액이며 생명력을 유지하는 연료’ - 조지 스티븐슨(영국·1781~1848)

인류 최초 증기기관차를 발명한 ‘철도의 아버지’ 조지 스티븐슨은 영국 뉴캐슬 탄광촌 출신이자 아버지와 함께 광산에서 일한 광부였다.

증기기관은 처음엔 석탄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개발됐다. 지하 깊은 곳 탄광에서는 언제 어디서 흐르는 지 모를 대량의 지하수가 가장 큰 문제였다. 지하수 출수 사고는 예나 지금이나 광업소에서 가장 무서운 재해였다.

최초의 증기기관은 지하 막장에서 지하수를 퍼내기 위해 개발됐다. 덕분에 안전하게 훨씬 많은 양의 석탄을 생산할 수 있고 생산량이 늘자 당연히 대량수송의 필요성이 생겨났다. 이에 조지 스티븐슨은 탄광에서 항구를 연결하는 증기기관차를 처음으로 발명했다. 이후 석탄과 증기기관은 산업혁명과 교통혁명의 동력이 됐고 세계사를 바꿨다.

세계적인 옛 탄광도시들은 탈석탄과 폐광 이후에도 재생에 성공하며 나름의 각광을 받고 있다. 이미 잘 정비된 교통망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 최초, 최대의 탄광도시인 에센 졸페라인은 1986년 폐광했지만 고속철도와 고속도로망을 갖춘 덕에 문화·관광도시로 거듭났으며 연 200만명의 관광객이 몰린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프랑스 북부의 탄광도시 랑스는 파리까지 고속철도로 연결돼있으며 2012년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분원을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스페인의 탄광도시 빌바오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해 세계적인 디자인 도시로 탈바꿈했다.

압축 성장을 거친 우리나라 탄광도시는 사정이 다소 다르다. 1970~80년대 짧은 전성기를 거친 후 1989년 이후 석탄합리화정책으로 인한 급진적 폐광이 이뤄졌다. 불과 40여년의 짧은 시간 사람들이 모여들며 급격히 도시가 팽창했다가 같은 속도로 수축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미처 기본적인 고속교통망을 갖출 물리적 시간이 없었다. 태백 삼척 영월 정선 폐광지역 4개 시·군은 전국에서 유일한 고속도로, 고속철도망의 사각지대로 남고 말았다.

오로지 증산에 매달리며 대한민국 산업혁명의 에너지를 제공해왔지만 결과적으로 합당한 대우는 받지 못한 것이다.

지난 23일 폐광지를 관통하는 영월~삼척고속도로가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며 사업 추진이 확정됐다. 1997년 국가교통망 계획에 처음 반영된 후 28년 만이다. 2035년 개통될 예정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충북 제천에서 영월까지 직선으로 연결하는 7조4,000억원대 대역사로 강원지역 SOC 사상 최대규모다. 이제 태백 청정 메탄올 미래자원 클러스터, 삼척 의료 중입자 가속기 클러스터와 수소특화단지, 영월 텅스텐 광산 재개발, 정선 강원랜드 경쟁력 강화 등 지역의 체질을 바꿀 최소한의 필요충분조건을 마련했다. 늦은 만큼 속도를 내야한다. 조기 완공을 위해선 공격적인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

물론 고속도로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올해 안에 확정될 제5차 국가철도망 계획에 영월~삼척간 철도 고속화 사업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SOC만 받쳐준다면 강원남부권은 석탄산업의 독특한 문화를 간직한 채 첨단산업으로 전환에 성공한 세계 최초 사례가 될 수 있다. 한국현대사의 중요한 축인 태백 삼척 영월 정선 역시 유럽의 옛 탄광도시처럼 충분히 세계적 유산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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