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인해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운 연말이다. 전국 곳곳에서 국민들이 다시 촛불을 들고 일어났고, 정부와 여당을 향한 규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강릉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특히, 강릉은 원조 윤핵관이자 현재 여당의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권성동 의원의 지역구인 만큼 규탄의 목소리가 더욱 크다. 권성동 의원의 사무실 앞에서 이미 수차례 기자회견과 집회가 진행됐고, 월화거리에서 열리고 있는 촛불집회에서도 윤석열 대통령 체포와 권성동 의원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이 같은 촛불집회는 이미 7년 전에도 전국적으로 진행됐던 만큼 낯설지 않다. 하지만 당시와 비교했을 때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참여다. 7년 전에도 집회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이 많았지만 올해는 청소년 시국선언 규모가 전국적으로 5만여명에 달할 정도로 훨씬 더 뜨거운 열기를 보이고 있다.
청소년들은 집회 분위기도 바꿔 놓았다. 그들은 촛불 대신 아이돌 응원봉을 들었고, 집회 현장에서 민중가요 대신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 지드래곤 ‘삐딱하게’ 등 대중가요가 흘러나오도록 만들었다. 어둡고 무거웠던 집회 분위기를 콘서트장처럼 밝고 힘차게 변화시켰다.
강릉에서도 청소년들의 참여가 눈에 띈다. 집회마다 청소년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고, 강릉시 청소년시국선언 동참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 같은 추세에 맞춰 집회에서는 청소년들에게 발언 기회를 몰아주고 있다. 많은 인파 앞에서 발언해볼 기회가 없었을 그들은 긴장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자신들의 생각을 또렷하게 전했다.
그렇다면 투표권도 없는 청소년들은 왜 이렇게 거리에 나오게 된 것일까. 발언 기회를 얻은 청소년들은 “어른들이 부끄럽다. 어른들에게만 모든 것을 맡길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계엄을 겪게 된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뽑을 기회조차 없었던 20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으로 인해 무서운 밤을 보내야 했다. 제주 4·3사건 피해자의 후손이라는 한 고등학생은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당시 악몽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물론 청소년들의 집회 참여를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어른들도 있다. 한 중학생은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나를 보고 한 어르신께서 ‘빨갱이’라고 하셨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적어도 청소년들은 진심을 다하고 있다. 혹자는 “청소년들에게 있어 아이돌 응원봉은 ‘자신이 갖고 있는 빛나는 물건 중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했다. 청소년들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걸고 집회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집회 참여를 반대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그들의 진심은 알아줄 필요가 있다.
과연 대한민국의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라 걱정보다 당파 싸움에 집중하는 듯한 정치인들을 청소년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할까. “어른들이 부끄럽다”는 청소년들의 목소리에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어른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