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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칼럼]비상계엄령 선포가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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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희 상지대학교 FIND칼리지 조교수

6시간여 만에 끝난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가 남긴 후폭풍이 거대합니다. 역사책에 박제되어있거나 영화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이 2024년 12월3일 한밤에 일어났습니다. 시작할 때는 비상계엄 선포였지만 역사적으로 어떻게 기록될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떤 이는 내란음모라 하고 어떤 이는 쿠데타라고도 합니다만, 분명한 것은 비상계엄 선포를 기점으로 윤대통령과 우리 국민은 도저히 함께 갈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넘었다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는 너무 충격적이어서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하고 현실감이 없었습니다. 어길 시 ’처단‘하겠다는 무시무시한 포고령이 내려오고 계엄군과 시민들의 국회 앞 대치 상황이 실시간으로 전송되면서 우려와 불안이 커졌습니다. 우리 세대에게 계엄령이란 '폭압'과 '저항', 그리고 이어지는 '유혈 희생'으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신속한 계엄령 해제로 긴박한 상황은 종결되었지만, 안도와 함께 몰아치는 경악과 분노는 지금도 누를 길이 없습니다. 당연히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한 모든 정치적,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불안해서 더 이상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절대 다수 국민의 심리적 공황 상태를 조속히 해소해야 할 의무가 정치권에 주어졌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계엄령 선포 절차가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점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국회를 무력화하고, 정적과 반대자들을 구금·체포할 수 있는 초법적 권한인데도 국무회의의 심의과정을 거쳐 국회에 통보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번처럼 깜깜이로 진행된 불법적이고 위헌적인 계엄령도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만으로 즉각 이행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물론 지난 40여 년 동안 우리 사회는 계엄령이 필요하지 않은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로 성장해왔고, 계엄법 조항은 사실상 사문화(死文化)된 것으로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뽑은 대통령의 의식과 사고가 국민 수준만큼 상식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하거나, 아집과 권력에 취해 국민의 뜻과 반대로 가는 길을 선택한다면, 언제라도 그 결과는 상상 이상의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 다시 실감했습니다. 그러니 어떤 초유의 상황에서라도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대통령의 권한은 재검토되어 견제 장치를 만드는 것이 시급합니다.

아울러 계엄령 선포와 해제 과정에서 보인 책임 있는 자들의 무책임하고 기회주의적인 행태도 반드시 단죄해야 합니다. 무기력하기만 했던 대통령실과 국무위원들은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만으로 면책이 될 수 없습니다. 특히, 계엄령 해제를 위한 국회 표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다수의 여당 의원들과 국회 본청에 있으면서도 자발적으로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여당 대표, 심지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를 야당 탓으로 돌리는 일부 여당 의원들의 한심한 작태는, 이들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국민의 일상이 통제되고,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국가의 대외 신뢰도가 한없이 추락할 수 있는 전방위적 국가 위기 속에서 이들은 국가와 국민의 편이 아니라 최고 권력자의 편에 섰습니다. 불법·위헌적 계엄을 지지하거나 방조한 것입니다. 이는 ‘주권자인 국민에게 총칼을 겨누는 것에 동의한다’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도무지 묵과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나마 이번 계엄령 사태가 남긴 유일한 위안이라고 한다면 젊은 세대에게 준 ‘민주주의에 대한 각성’일 것입니다. 그동안 젊은 세대들이 당연하게 누려 온 민주주의와 자유는 결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 피로 얻어진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의 정치적 방심은 민주주의를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민주주의의 상실은 곧 개인의 일상 파괴로 이어진다는 것을 절감했을 것입니다.

생각할수록 가슴을 쓸어 내리게 되는 그날 밤, 주저 없이 국회로 달려가 계엄령 해제를 외친 수천 민주시민들의 담대한 용기와 실천적 행동에 다시금 깊은 감사와 경외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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