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권혁순칼럼]윤석열 대통령 ‘강원도 지원하겠다’는 말의 무게

지도자의 말은 억만금의 가치

1986년.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 후 공중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사고가 난 지 불과 6시간 후에 4분여 동안 대국민 연설을 했다. 연설의 첫머리에서부터 마지막까지 그는 계속 ‘우리’를 주어로 썼다. ‘우리’는 이들 영웅 7인의 죽음을 애도한다면서 승무원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른 다음 ‘우리’는 그 가족들처럼 슬퍼한다고 했고, ‘우리’와 승무원들은 모두 개척자라고 했다. 이어 승무원들은 ‘우리’를 미래로 이끌었으며 ‘우리’는 앞으로도 그들을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2차 대전에서 공중충돌사고로 사망한 존 길레스피 매기의 시 ‘고공비행(High Flight)’에서 두 구절을 인용해 연설을 마쳤다.

연설 중 그는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에게 챌린저호 사고를 “탐험과 발견의 과정 중 일부이며 인간의 지평을 넓히기 위한 모험”이라고 했다. 지도자가 공식적으로 내뱉는 말은 때로 그 자체로 국민에게 커다란 힘과 방향을 제시한다. 특히 지역사회가 경제적 난관에 부딪혔을 때 국가 지도자의 말 한 마디는 억만금의 무게를 지니며 그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폐광지역인 강원특별자치도를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주목할 만하다. 즉, 윤 대통령은 지난 17일 강릉에서 열린 ‘2024년 바르게살기운동 전국회원대회’에 참석한 후 김진태 지사와 김시성 도의장, 김홍규 강릉시장, 심규언 동해시장, 박상수 삼척시장, 전광삼 시민사회수석 등과 늦은 오찬을 하며 이 같은 내용의 강원 현안을 논의했다. 이것은 단순한 지원 선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는 폐광지역 주민에게 새로운 생명선을 제시하는 동시에 국가가 그 지역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말이 단순히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여러 가지 구체적인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1980년대 영국의 마가렛 대처 총리는 북부의 석탄 광산들이 폐쇄되는 상황에서 철강 산업과 제조업 부흥을 위한 대체산업 육성 계획을 수립했다. 대처 정부는 폐광지역에 재투자를 확대하고, 첨단 제조업 및 기술 산업 유치에 집중했다. 초기에는 상당한 반대와 저항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폐광지역들은 첨단 산업의 중심지로 변모하게 되었다. 이처럼 강력한 국가적 의지와 구체적 정책 지원은 폐광지역의 미래를 새롭게 열어줄 수 있다.

독일은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석탄 산업이 쇠퇴하며 루르 지역이 극심한 경제적 타격을 받았다. 이때 독일 정부는 석탄 산업 종말에 대비해 과감한 대체산업 육성 전략을 펼쳤다. 특히 루르 지역의 재생 에너지 산업과 문화 산업 육성에 집중하면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켰다. 외국의 사례에서 배울 수 있는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단순한 대체산업 유치가 아니라 그 지역 주민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산업 구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이 또 이번 발언에서 “억지로 무엇을 유치해 관광객을 오게 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주민들의 실제 삶과 맞닿은 산업이 필요하며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특히 태백 장성광업소의 청정메탄올 생산 거점 조성과 삼척 도계광업소의 의료 클러스터 조성 같은 구체적인 사업은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없으면 실현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이 직접 “정부에서 관심을 갖고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실제 정책적 지원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래서 윤 대통령 발언 이후 그 어떤 후속 조치가 나올지 폐광지역 주민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윤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동력이 된 폐광지역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으로 이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정책 수립이다. 국민이 지도자를 평가하는 수단은 결국 말이다. 지도자가 국민 앞에서 진심으로 말하면 정책에 그게 묻어난다. 국민은 그 향기에 감동하고 모여들고 존경을 보내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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