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월요칼럼]대화가 필요해

심재범 변호사

명절이 지나면 평소보다 부부간 갈등을 호소하며 이혼을 상담하러 오는 사례가 많다. 명절을 보내는 동안 갈등이 빚어지거나 심해져서 이혼을 고려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심리학자 홈스(Thomas Holmes)와 라헤(Richard Rahe) 박사는 삶을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스트레스 순위를 100점 기준으로 점수화 해 보았었다. 가장 높은 스트레스 지수에 해당하는 사건 1위는 배우자의 사망으로 100점에 해당하였다. 2위가 이혼으로 73점, 3위가 배우자와의 별거로 65점, 4위가 교도소 또는 보호시설에 수감되는 것으로 43점이었다. 배우자와의 이별에서 오는 고통은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필자는 이혼 관련한 상담을 진행하거나 실제 재판까지 가는 경우 당사자들이 겪는 스트레스를 직접 보고 듣기 때문에 이러한 스트레스 지수에 대하여 충분히 공감이 된다.

미국은 연간 인구 1,000명당 이혼 건수가 15건 정도인 반면 우리나라는 2건 정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성혼율이 급속도로 떨어지는 점을 고려할 때 마냥 낮다고 볼 수도 없다. 실제 이혼 전문 변호사들의 에피소드가 드라마로 방영되거나 이혼이나 재혼 관련 소재가 여러 프로그램에서 빈번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소위 이혼 전문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이혼 사건은 마치 정해진 공식이 있는 것처럼 진행된다. 협의가 아닌 재판상 이혼을 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이혼사유를 확인하고, 미성년자인 자녀가 있는 경우 양육권 및 양육비, 친권행사자를 정하고, 면접교섭권 행사방법이 순리대로 정해진다. 치열한 다툼이 있는 영역도 아니다. 재산분할의 경우에도 틀에 짜여진 대로 그 비율을 정하면 그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과정에서 당사자들은 무의미하게 죽기살기로 달려들고 그 상처를 고스란히 스스로 받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이혼과정에서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진정성있는 대화를 수반한 현명한 대처이다. 묵은 감정을 다 쏟아내면 이후 어떻게 아이에게 아빠, 엄마의 자리를 이해시킬 수 있겠는가. 상대방에게 생채기를 내고 본인은 마음 편히 새출발을 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불필요한 감정 소비를 최대한 억제하고, 이혼하려는 상대방을 마지막으로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종종 갈등이 해소되는 경우도 있다. 전부 듣고, 찬찬히 생각해 보고, 흥분하지 않으면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을 하든 이혼을 하든 미련이 남지 않을 것이다.

추석 연휴 중임에도 하루조차 기다릴 수 없어 이혼 상담을 하러 온 50대 부부의 사례를 보며, 부부로 살면서 얼마나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는지, 얼마나 대화와 이해가 필요한지 여실히 느꼈다. 사무실에 들어올 때부터 서로 간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들이 서로에게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도통 알 수는 없었지만 결혼생활에 미련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바라는 점을 진심을 다해 글로 써 보라고 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보여주었다. 부부는 올 때와 다른 모습으로 사무실을 나섰다. 그들의 결혼생활이 어떤 결론에 이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선택을 하든 이혼을 결심하든 그 과정은 덜 외롭고 덜 아플 것이다. 상대방의 진심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대화가 필요해’ 라는 노래의 제목처럼 우리에겐 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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