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언

[언중언]악성 민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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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상주하는 홍천군청 2층에는 매주 ‘그분’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린다. 군수실부터 기획감사실뿐만 아니라 현안 부서인 미래성장추진단까지 넘나들며 문을 열고 외친다. 민원 내용보다는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는 심오하고 철학적인 말이 더 잘 들린다. 기자실을 나오면서 ‘그분’과 눈이 마주쳤다. 필자에게 “기자예요?”라고 물었다. 어떠한 순간에도 기자 정신을 놓아서는 안 되지만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할머니, 무서워요.” ▼가끔은 공무원의 비위 행위를 ‘제보’ 한다는 전화도 받는다. 공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담당 공무원부터 결재 라인 전원을 경찰에 고소했다는 말도 덧붙인다. 들어 보면 기사로 쓰기 어려운 주관적인 내용들이다. 민원 업무가 뜻대로 처리되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다. 이런 경험을 팀장급 공무원에게 꺼냈더니 “저도 경찰 조사 몇 번 받았어요”라며 이렇게 말했다. “공무원 언제까지 해야 하나 싶어요.” ▼악성 민원인이 매일 뉴스로 다뤄지는 요즘이다. 민원(民願)은 행정이 존재하는 이유다. 민원처리법에 따르면 담당자는 민원을 신속, 공정, 친절, 적법하게 처리하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악성(惡性)’이 붙으면 달라진다. 흉기와 폭언, 폭행으로 행정의 존재를 위협하거나 공무원들이 떠나도록 만든다. ▼악성 민원인은 사회적 비용도 유발한다. 홍천군의 경우 AI가 탑재된 CCTV를 올 하반기 구축하는 데 2억원에 가까운 예산이 투입된다. 다른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맞춤형’이 대세인 시대라 전국 지자체의 악성 민원인 사례를 종합해 유형별로 분류하고 대응 매뉴얼을 개발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민원 내용의 합리성, 제기 방식의 적법성 등을 기준으로 고도화된 매뉴얼도 마련해야 한다. 어느 과장급 공무원은 “매일 오던 민원인이 안 보여서 덜컥 걱정됐던 적이 있었어요”라고 했다. 이런 경험담도 낭만으로 여겨질 정도로 ‘존중’은 시답잖은 무엇이 돼 버렸다. 우리 조상들은 ‘절하고 뺨 맞는 일은 없다’고 하셨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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